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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탈진실'의 우물 밖

by 장돌뱅이. 2023. 12. 27.

『포스트 트루스』는 미국 하버드와 보스턴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리 매킨타이어 (Lee Mckintyre)가 지은 책이다. '포스트 트루스(POST-TRUTH)'는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접두사 포스트(POST)는 시간 순서상 진실 이후라는 뜻이 아니라 진실이 무의미할 정도로 '퇴색(탈진실)'되었다는 뜻이다. 책은 거짓 정보가 어떻게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왜 사람들은 진실이 아닌 정보에 현혹되는지를 철학적, 심리적, 사회학적으로 설명한다. 주로 미국의 사례들을 들어 설명했지만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데도 적절한 시각을 제공한다. 

탈진실이란 감정이 사실보다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리킨다. 하지만 탈진실 현상이 도대체 '왜' 일어나는지 역시 주목해야 한다. 명백한 사실이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에 아무 이유도 없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불편한 진실 때문에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진실에 도전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이는 의식적인 차원에서도 일어나지만 (때로는 우리가 확산시키고 싶은 대상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차원에서도 일어난다. 어느쪽이든 요점은, 진실 자체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확고히 하고자 할 때 탈진실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결국 탈진실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우월주의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우월주의를 장착한 사람들은 충분한 근거가 있든 없든 자신의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강제로 주입하려고 애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정치적 우위를 점하고자 한다.

우리는 어떤 진리 이론이 타당한지 따지기 앞서 "사람들이 어떤 다양한 방식으로 진실을 전복시키는지 이해"해야 한다. 담배의 유해성 논쟁이 한창인 1969년 한 담배 회사의 중역은 내부문건 속에서 '대중의 정신에 박혀 있는 '사실의 실체에 맞서려면 의혹만 한 게 없다'고 말했다. 의혹을 만들어내기 위한 비법은 '자신만의 전문가를 구해 연구를 지원하고,  언론에 양쪽 입장을 다 들어보야 한다는 인상을 남기고, 홍보 및 로비 활동을 통해 자기 입장을 밀어붙이며, 그리고 그로 인해 야기되는 혼란을 활용해 문제 삼고 싶은 연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이런 전략은 전략방위계획, 핵겨울, 산성비, 오존홀, 지구온난화 문제 등 여러 과학적 '논쟁'에 활용되었다.

청부받은 전문가들은 가짜 연구를 진행해 논란거리는 만들어 냈다. 청부받은 선동가들은 TV에 나와 반복적으로 반대논리를 제시했고 이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졌다. 필요한 경우에는 논란이 대중의 의식 속에 각인될 수 있도록 광고까지 제작되었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과학부인주의가 남긴 교훈을 놓칠 리가 없었다 이제 자신의 정치적인 술수를 감출 필요조차 없다. 증거를 확인하는 대신 팀을 하나 골라잡기만 하면 되는 당파적인 환경 속에서 잘못된 정보는 공공연하게 퍼져나가고 사실을 검증하는 과정은 쉽게 외면당한다. 새롭게 탄생한 탈진실 세계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실만 선택적으로 이용하고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 사실은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 현실을 창조해 내는 핵심 수단이 되었다. 사실과 진실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정치적 결과만 생각하는 사람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얻는 것도 없는데 굳이 자신의 언행이나 의도를 포장할 필요가 있을까? 수년간 '출생 음모론(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태생이 아니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조장하고도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지지자들이 실제 증거보다는 어느 편에 속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면 '사실'은 '의견'보다 아래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십 년 동안 역정보와 의혹을 퍼트려 담배와 암의 연관성을 모호하게 만들 수 있었다면 다른 정치적 이유에도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우리 눈앞에 드러나고 있는 대로, 과거든 현재든 다 동일한 동기로 똑같은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오늘날에는 진실 자체라는 더 큰 목표물을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이념이 과학보다 우선하는 세계에서 '탈진실'이라는 운명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생각만큼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는 점을 실험을 통해 보여줬다. 자신의 감정을 진실에 맞추기보다는 비합리적이게도 자신의 믿음을 감정에 맞추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경향은 주위에 동일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을수록 더욱 강화된다고 한다.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상호작용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다. 정치적 신념이 어떻든지 간에 본인이 원하는 '뉴스 사일로' 속을 살아갈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누군가가 남긴 댓글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친구 삭제'를 하거나 '숨기기' 가능을 이용하면 된다. 음모론에 한껏 취하고 싶다면 종일 음모론을 소개해주는 방송 채널을 찾아보면 된다.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로만 주위를 가득 채우기가 이전 어느 때보다 쉬워진 것이다. 게다가 일단 사일로 속에 들어가고 나면 자신의 생각을 집단의 생각에 맞춰야 한다는 압력이 더욱 강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 "존재하는 것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존재한다고 말하면 거짓이다. 반면 존재하는 것에 대해 존재한다고 말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참이다."라고 말했다. 당연한 말인데도 진실과 탈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 우리 사회의 모습에 들이대면 그 효용성이 당연 이상이 된다.

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는 지나치게 높은 검증 기준진실로서 받아들이대는 반면 자기 의견에 부합되는 사실은 덮어두고 맹신한다.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사실만 진실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과는 일부 사실들이 버려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사실을 수집하고 활용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믿음을 구축하는 과정 자체가 변질된다. 어떤 사실들은 개인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참이며 그처럼 참인 사실들을 찾으려고 노력할 때 정치인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생각이 흔들리게 된다.

히틀러의 선전장관인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출처 기억 상실'(source amnesia, 습득한 정보가 무엇인지는 기억하지만 믿을 만한 출처에서 나온 정보인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이나 '반복 효과(repetition effect, 메시지가 여러 번 반복될수록 메시지를 믿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와 같은 인지 편향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할 줄 아는 선동가였다.

"프로파간다는 조종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자유의지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착각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고 괴벨스는 말했다. 프로파간다의 목적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팀을 선택'하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자신의 말이 옳다고 확신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위가 진실보다 위에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정말로 강력한 정치 지도자는 현실마저 거역할 수 있는 것이다.
2016년 이후 도널드 트럼프의 전략은 이와는 다를 수 있지만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 뜬금없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라.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더라."라거나 "신문에서 읽은 내용 그래로 말하는 거다."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면 된다. 예를 들자면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거나 오바마가 트럼프를 도청했다고 주장하라.
2. 자신의 확신 외에는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말라. 어차피 증거는 존재하지도 않으니까.
3. 언론이 편향되어 있으니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라.
4. 그러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언론에서 접한 내용이 정확한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아니면 적어도 해당 문제에 논란이 많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5. 불확실함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자기 선입견에 들어맞는 내용만 믿으려고 하다가 점점 더 자신의 이념에 고착되고 확증 편향에 빠져들게 된다.
6. 이제 가짜 뉴스를 퍼뜨리기에 훌륭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가짜 뉴스는 1~5번 과정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7. 결국 사람들은 내가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믿음은 집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위에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 존재하고 신뢰할만한 반대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믿음을 조종하기가 쉬워진다. 때로는 반대 증거가 존재하더라도 쉬울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짓거리'라고 쓰여 있는데도 자꾸  우리나라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탈진실 현상은 우리가 권위주의 체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파시즘의 전조라는 말은 두렵게 다가온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레트도 "전체주의 지배가 노리는 가장 이상적인 대상은 확신에 찬 나치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사실과 허구 혹은 참과 거짓을 더 이상 분간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어찌할 것인가. 책의 말미에 간단한 원칙이 나온다. 행동의 원칙은 언제나 간결하다.

"진실이 바지를 입기도 전에 거짓은 지구 저편까지 가 있다."(···) 우리는 정보 통신 기술을 가지고 거짓을 퍼뜨릴 수도 있지만 진실을 퍼뜨릴 수도 있다. 진실이 싸움에 뛰어들 만큼 가치 있는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진실을 위해 싸우도록 하자. 우리가 가진 도구가 위험한 무기로 이용당하고 있다면 다시 그 도구를 되찾도록 하자.

교훈은 거짓말에는 언제나 맞서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주장이 아무리 터무니없다고 할지라도 아무도 믿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그 말을 믿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충분한 상식을 갖추고 있어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더 이상 그러한 가정을 해서는 안 된다. 탈진실의 시대에는 당파적인 힘이 개입해 사람들을 조종하고 정보의 출처가 파편화되어 있어서 누구든 의도적 합리화에 쉽게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짓말에 맞서야 하는 이유는 거짓말쟁이를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차피 거짓말쟁이는 이미 자신의 검은 속내에 너무나 깊이 빠져서 갱생의 여지가 없을 수 있다. 그보다 우리는 모든 거짓말에  관객이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거짓말과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가 거짓말에 맞서지 않는다면, 단지 무지한 상태에 있던 사람들이 의도적 인식 회피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부인주의 단계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어떠한 사실이나 증거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거짓말을 마주하면 거짓말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탈진실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사실문제를 모호하게 만들려는 그 어떤 시도에도 의문을 제기해야 하면 어떠한 거짓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 거짓이 내는 목소리가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진실'은 우리에게 맞서 싸울 힘을 준다. 당파적인 주장이 끝없이 이어지고 회의론이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시대라고 할지라도 '진실'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정준희 교수가 쓴 해제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 사회의 언론과 사람들에게 던지는 서늘한 경고다.

여기서 언론의 역할이 소환되지 않을 수 없다. 의도적으로 거짓과 요설을 양산해 진실을 물타기하는 행동조차 유력 정치인과 정당의 것이기에 사회적 발언으로 수용하는 한, 탈진실은 추방되지 않는다. 판단은 그들이 아닌 당신들의 몫이며 그 무게를 감당하지 않는 자에게는 지옥의 자리가 남겨져 있다.

*이상『포스트 트루스』에서 인용·편집·첨가·변형 했음. 

장 레옹 제롬 「우물 밖으로 나오는 진실(Truth Coming Out of Her Well) 1896」

어느 화창한 날 진실과 거짓이 만났다. 거짓은 맑은 우물에서 목욕을 하자고 말한다. 함께 우물 속에서 목욕을 하는 도중에 거짓은 우물 밖으로 뛰쳐나와 진실의 옷을 입고 달아나 버린다. 옷을 도둑 맞은 진실이 슬픔에 탄식을 하는 동안 거짓은 세상에서 활개를 치고 다닌다. 고가 핸드백을 받은 것은 공작이 되고 Member는 'YUJI'가 정상이며 길은 휘어져야 맛이고 주가조작은 현명한 경제활동이 된다. 어느 날 진실이 우물 밖으로 나오며 소리칠 때 사람들은 어떻게 마주하며 무엇을 말할까? 그때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진실의 용기 대신에 염치없음과 무례함의 겉모습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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