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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동지 무렵

by 장돌뱅이. 2023. 12. 22.

혹한이 와서 오늘은 큰 산도 앓는 소리를 냅니다
털모자를 쓰고 눈 덮인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피난하듯 내려오는 고라니 한 마리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고라니의 순정한 눈빛과 내 눈길이 마주쳤습니다
추운 한 생명이 추운 한 생명을
서로 가만히 고요한 쪽으로 놓아주었습니다

- 문태준, 「눈길」-


춥다.
그래도 '서로 가만히 고요한 쪽으로' 가다 보면 늘 따뜻한 일은 있다. 

동짓날.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지만, 애동지에는 팥죽을 먹으면 아이들에게 탈이 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에 팥떡을 먹는다. 올해는 애동지다. 손자저하들 생각에 팥떡을 사다 먹었다. 

손자2호가 영상 전화를 주었다.
어린이집에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만났으며 할아버지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며 선물도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갑자기 화면 속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도 할아버지잖아!"
(오해하지 마시라. 손자2호는 아직 존칭어를 잘 모른다.)

미국 샌디에이고의 7년 생활 동안 아내와 나의 가장 큰 변화는 성당엘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삶의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교리를 가르쳐주신 수녀님과 교리반에서 봉사를 해준 패트릭 님과 그의 가족은 그때의 인연이다.
지금은 폴란드에 사는 패트릭네가 귀국을 하여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연말이라는 시간이 만들어 준 선물이다.
식사를 하고 차를 나누는 동안 추억은 걸핏하면 우리를 그 시절로 데리고 갔다. 떠들고 웃었다.
사는 건 기억하고 안부를 묻고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사진을 깜빡 찍지 못해  받은 선물 사진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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