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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군바리' 시절의 노래

by 장돌뱅이. 2023. 12. 19.

천만 관객을 앞두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은 엔딩 크래딧에 나오는 군가도  화제인 모양이다.
영화가 끝나 불이 켜졌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관객들 사이 앉아 엔딩곡을 들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1981년 한 공모전에서 가작상을 받은 군가 <전선을 간다>라고 한다.
영화는 이것을 느리고 비장·엄숙한 분위기로 편곡한 것 같았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전선을 간다>는 전우가 숨져간 자리를 딛고 전진을 한다는 내용이 가수 현인의 <전우야 잘 자라>를 닮아 있다. 1950년에  만들어진 <전우야 잘 자라>는 '낙동강에서 추풍령, 서울을 거쳐 북진을 하면서 '꽃잎처럼'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스러져간 전우에 대한 애잔함이 행진곡 풍의 곡조에 담겨 있는 노래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군가(진중가요)이기도 하다.

이 노래를 나는 처음 군대가 아닌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전쟁놀이를 하면서부터 아이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배웠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나 <<결사대작전>> 같은 전쟁 영화에 빠져있을 때라 4절의 가사를 뒤죽박죽으로 부르며 동네 뒷산을 헤집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를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 주는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군에 있을 때 공식적인 군가 외에 여러가지 구전되는 노래를 알게 되었다.
훈련소에서는 일부 조교들이 갓 입대한 훈련병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군생활의 '짬밥'이 쌓이면서 저절로 익히게 되기 마련이었다. 

대개 ♪영자야 내 동생아 여기 이 오빠는 장교가 아니고 박박 기는 쫄다구♬라는 고달픈 신세 한탄,
♪지나가는 여대생을 붙잡아 놓고 군바리 사랑 얘기 들려줬더니♬로 시작하는 위악적인 성적 표현,
♪언제나 집에 가요, 휴가를 가요, 그리운 짝순이에게로 편지야 잘이잘이 가거라♬라는 고향(집)과 두고 온 어머니와 애인에 대한 그리움,
♪소령 중령 대령은 OOOOO, 소위 중위 대위는OOOOO, 하사 중사 상사는 OOOOO, 불쌍하다 이내 신세OOOOO♬(이)라는 군대에 대한 풍자와 야유 등으로 분류될 수 있겠다.
(OOOOO에는 술, 숙소, 성, 도둑질 등에서 계급에 따른 차등을 표현하는 다양한 말이 들어간다.)

'노래'라는 말은 본래 '놀이'라거나 '놀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자발적 선택이 아닌 의무로서 3년을 채워야 하는 '군바리'에게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유희(遊戱)의 도구로, 또는 신세한탄이나 한풀이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드러내고 또 이겨내려는 의지의 발현으로 그런 노래들이 기능했을 것이다.

모든 구전가요가 그렇듯이 군대에서도 비슷한 곡조에 각각의 상황에 맞게 약간씩 가사가 변형되곤 한다. 위 노래 중 <소령 중령 대령···>과  <지나가는 여대생···>는 곡조는 같고 가사는 다만 다르다.
제대를 하고 어느 자리에 가니 <야근>이라는 제목의 노동가요로도 바뀌어 불리고 있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청년회 『젊은 예수』 중에서

이외에 가수 마야가 힘차게 부른 <진달래꽃>의 원형도 나는 군대에서 먼저 배웠다.
원래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 회자하던 구전가요라고 하는 말도 있다.

요절한 가수 차중락의 <철없는 아내>를 '노가바' 하여 ♪낯설은 남남 간에 너와 내가 끌려와서··· 얼마나 처발렸던가··· OO새지마, 곡소리 난다 철없는 쫄다구여♬라고 부르기도 했다.
쓰다가 보니 이런 노래도 생각난다. 제목은 없다.

찬 이슬 내리는 GOP전선에서 두고온(고향 땅) 한 여인(어머니)을 못 잊어서 내가 운다
철책이 가로막힌 GOP전선에서 사나이 사나이가 한 여인(어머니)을 못 잊어서
눈물을 흘리면서 휴가(제대) 날짜 기다린다

제목이 없는 것이 구전가요의 한 특성인 듯 아래 노래도 그렇다.

젊고도 젊은 그 시절 돈 잘 쓰고 잘 놀아났 건만
지금은 군바리 신세 최전방이냐 GOP더냐
한 많은 이내 몸이 갈 곳은 고향의 엄마(애인) 품
노을 진 50 초소 외로이 서서 엄마(애인) 모습 그려보는 육군 병장 O병장이다.
(이 노래 시작부는 태진아가 부른 <사랑은 아무나 하나>의 곡조와 거의 같다.)

내가 이런 노래 몇 곡을 아직도 기억하는 건, 한 때 채집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규격화 된 군 생활에 그나마 사람 냄새 나는 틈새인 것 같아 듣는 대로 일삼아 기록해 보았다.
개중에는 글로 옮기기 힘들 정도로 심한 욕설과 저급한 성적 표현이 들어간 노래도 있었다.
그 때문에 내무검열에서 그런 걸 왜 기록해 두느냐는 지적을 받고 기록 수첩을 파쇄해야 했다.

국난극복기장, 지인의 카톡 프로필에서 가져왔다.

군 입대를 하여 10.26 사태, 12.12군사쿠데타, 광주민주항쟁, 최규하 사임, 전두환 취임의 격변기를 보냈다. 우리끼리 하는 말로 '군장을 꾸렸다 풀었다' 몇 번 하니 중고참이 되어 있었다.

1980년 말인가 나라에서는 그 시기를 군에서 보낸 장병들에게 이른바 '국난극복기장'이란 걸 주었다.
나는 그걸 야간보초를 서다가 부대 밖으로 멀리 날려 보내버렸다. 특별한 시대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끼리 철모를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보다 하찮은 것이 뭔지 모를 모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개자식들! 차라리 별사탕 든 건빵이나 한 봉지 주었으면 먹기나 하지! 아마 그렇게 투덜거렸을 것이다.
그런데 'X퉁수를 불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는' 세월의 혜택으로 제대할 때가 되었을 때, 갑자기 그걸 왼쪽 가슴에 달고 제대 신고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당황하기도 했다.
끝까지 지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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