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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곱단님 생일 축하합니다

by 장돌뱅이. 2023. 12. 12.

이젠 서로 팔짱을 낄 일도 없고
술 먹다 눈 마주치면 그 눈빛 못 견뎌서
벽이나 모텔로 벌겋게 숨어들 일도 없고
심야택시 잡을 일도 없고
친구 생일 따위에 따라가 고깔모자 쓸 일도 없고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기다릴 일도 없고
괜히 등산복 사 입고 산에 갈 일 없고
벅찬 오페라에 돈 쓸 일 없고
웃어줄 일 없고
편지 쓸 일 없고
꽃 이름 나무 이름 산 이름 골목 하물며
당신 초등학교 단짝 이름 암기할 필요 없고
슬프고 아픈 척할 일 없고
군대 태권도 1단증 갖고 강한 척할 일 없고
미래에 대해 설명하거나 설득할 필요 없고
사랑한다 거듭 고백할 필요 없고
없으나
우리가 살아서 서로의 옛날이 되고
옛날의 사람이 되어서 결국 옛날 애인이 될 것을 
그날 하루 전에만 알았던들

아내여,

- 류근, 「옛날 애인」-

그날? 그날이 어떤 날이건, 하루 전에 알았건 몰랐건, 월하노인이라던가 누군가 묶어준 빨간 끈으로 어차피 우리는 '서로의 옛날'이 되고 '옛날 애인'이 되기로 기꺼이 나섰을 것입니다.

공사다망하신(?) 손자저하들에 맞춰 일요일에 먼저 케이크 촛불을 불고, 오늘은 또 우리 둘이서 와인을 들어 축하를 나눈다 해도 그것이  번거롭거나 수다스러운 '이중과세(二重過歲)'가 아니라 그저 즐거움의 '더블샷'이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옛날 애인'이었던 시절의 노래를 들으며  당신이 좋아하는 몇 가지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그저 잘 먹고 잘 놀고 잘 기도하는, '옛날 이야기'를 오래 만들어 갑시다.

해물잡채
삼치조림
귤사과무침
소고기구이와 와인소스
문어숙회
미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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