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서울의 봄>>

by 장돌뱅이. 2023. 12. 10.

1979년 12월 12일.
나는 졸병으로 전방부대에 있었다. 10.26 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순간에 느닷없이 '진돗개 하나'가 발령이 되었다. 국지전이 벌어질 수(벌어지고) 있다는 실제 상황이었다. 뭐지? 무장공비라도 넘어왔나? 짧은 시간에 온갖 이야기들이 돌았지만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날이 샌 뒷날 서울에서 온 한 군용 지프 차량 운전수가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간밤에 서울 한남동 일대에서 치열한 총격전이 있었다고 했다. 무장공비가 서울까지 온 거야? 라며 모두가 놀랐지만 그건 아닌 거 같다고 말할 뿐 더 이상은 그도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무장공비라면 아침 뉴스나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을 것이다. 

뒤이어 계급장을 뗀 군복 차림의 정승화 참모총장의 사진이 실린 신문을 보면서 작대기 두 개의 일등병으로서는 알 수 없는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다는, 두려움 섞인 짐작만 해볼 뿐이었다. 군대에 배포되는 "전우신문"에 전두환 찬양 기사가 집중적으로 실리기 시작한 것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보는 내내
긴장해서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이 영화의 힘이다.
실제와 마찬가지로 영화 속에서도 반란군의 계획은 치밀했고 실행은 전격적이고 잔인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 등의 군 최고통수권자 라인은 결정적인 순간에 지지부진하고 지리멸렬했다. 군인 본분에 충실하려던 소수의 장군들은 정보와 조직에서 반란군을 당할 수 없었다.
그들의 장렬한 저항이 그래도 인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한다.

하룻밤 사이에 우리의 현대사를 끔찍한 퇴행의 길로 급선회 시킨  12.12는 마치 조직깡패의 행태와 '묻지마 살인'을 합쳐놓은 것 같은 사태였다. 몽둥이 대신에 총칼을 들고, 조직원 대신에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들을 사병(私兵)처럼 동원해서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르고,  '나와바리'를 접수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니 그 이상이다.
12.12에 그들이 주장하는  '국가', '안위', '구국', '희생'은 없었다.
오직 집권과 출세, 부귀와 영달을 위한 획책, 패륜과 불법의 하극상이 있었을 뿐이다.

12.12 반란이 성공한 뒤 지휘부와 행동대장들이 보안사에 모여 찍은 사진 한 장이 전한다.
모두 34명이었다. 별 셋 3명, 별 둘 5명, 별 하나 6명, 그리고 영관급 24명이었다. 한 나라의 국권을 뒤흔든 세력치곤 그야말로 '한 줌'에 지나지 않는 무리였다. 나중에 이들 중에서 대통령 2명, 안기부장 2명, 육참총장 2명, 국회의원 8명이 나왔다.

영화를 보러 가기 며칠 전 딸아이가『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이란 책을 사주었다.
갑자기 웬 전두환? 그에 대해선 80년대 이후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씹어온' 터라 새삼 더 이상의 것을 알고 싶지 않았지만 딸아이의 선물이라 읽어보았다.

책은 전두환의 집권 과정과 통치에 대한 역사적 평가보다는 인간 전두환의 심리적·내면적 특성에 비중을 두고 있어 애초 기대했던 것보다 흥미로웠다. 그중  몇 가지를 추려본다. (책에는 그의 낙천성, 적극성, 여유, 배짱 같은 긍정적인 기질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장점은 리더라기보다는 '보스'에 가깝게 표출되었다. 그리고 그의 통치기에 있을 수도 있는 '공적'조차도 그가 12.12, 오월광주 등의 원죄에 대해 일말의 사죄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정체성은 오직 하나 '살인자'로 남게 되었다.) 

한 가지 유념해 볼 것은 그(전두환)의 성장 과정에서 접했던 사람이나 기관, 활동들이 모두 실용성과 현실적 기능을 위한 범주로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 전두환에 관한 기록에는 그가 기능 중심으로 설계된 공고와 육사 같은 정규 코스 외의 취미나 종교 활동을 가진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식민지 시절과 전쟁을 겪으며 국민 대다수가 헐벗고 굶주리는 상황에 처했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도 이는 다소 특기할 만한 부분이다.

사람들은 종교단체나 지역단체, 취미를 매개로 모인 그룹에서 활동하며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넘어선 타인들을 만난다. 제 핏줄이 아닌 '남'과 화합하거나 갈등하며 내가 속한 지극히 작은 공동체인 가족을 넘어선 차원의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낀다. 이를 통해 '국가'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거대 공동체가 줄 수 없는 다양한 가치와 만나고, 동시에 창출해 낸다.

돈이 되거나 출세에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하고 나면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는 활동들, 즉 종교 활동이나 취미 활동, 창작활동은 한 인간의 영혼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런 활동을 통해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 활동'을 할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고, 인간의 다양한 결과 층위를 체험하게 된다. 또렷한 선악 구도나 흑백 구도에서 벗어나 사람의 내면에 수많은 자질의 스펙트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두환의 태도 변화를 이끈 동인은 단 한 가지였다. '제가 처한 상황'이라는. 그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앞을 내다보지도 않았다. 오직 그 순간, 자신이 당면한 현재에 머물렀다. 시선도 오롯이 제 몸뚱어리와 그 내부에 있을 마음만을 향했다. 그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의 피붙이들(혹은 자신의 보위 세력)뿐이었다. '광주'가 갖는 의미, '광주'에서 희생된 이들의 삶에 어렸던 가치와 아름다움과 가능성,  그 삶이 사라지던 순간 그 삶과 연결되어 있던 수많은 삶에 미쳤을 거대하고 압도적인 파장, 그런 것들은 한순간도 그의 뇌리에 담기지 못했다.

전두환에게 '과거의 자신'은 타인과 다름없었다. 과거의 자신이 광주에 대해 무슨 말을 했든 어떻게 행동했든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저 '현재의 나'가 무사히 살아남아 안녕을 누릴 수 있다면 그는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광주를 피상적으로 철저히 자기 위주의 관점에서 보고 대응한 것은 그런 그의 근본적인 기질, 즉 '현재, 여기, 나'만 보고 사고하는 특성, 자신과 관련 없는 타인에게 완벽하게 둔감할 수 있는 그의 탁월한 능력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이런 유형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키워드는 '가벼움'이다. 그의 90년 인생을 뒤쫓다 보면, 전두환의 내면에 어떤 막이 존재했으리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내면의 일정 깊이 이하로 내려갈 수 없도록 만드는 단단한 막이 존재해, 그 내면의 소유자가 언제나 의식의 표면과 그 언저리에서만 맴돌게 했으리라는 상상을. 이 막의 기능으로, 특정 사건과 마주쳤을 때 전두환은 그 사건을 깊이 파고들지 않을 수 있었다. 핵심을 파고들어 가 진상과 대면하며 괴로워하는 대신, 현상의 표면에 머물다가 내상을 입기 전에 철수할 수 있었다.

전두환은(···) 제 몸 바깥에 있는 수많은 사물, 사람, 환경과 접하고 교류했지만, 제 몸 안쪽에 있는 자신의 영혼과는 제대로 만난 적이 없었다. 자신과 만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 자기 내면 깊숙한 곳으로 침잠해 들어가야 하는데, 그가 가진 특유의 '가벼움'은 그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만나야 할 자기 내면의 인물과 만나지 못했던 그가 잠깐이나마 움켜쥐었던 외부 요소들, 재물과 직위와 영향력과 타인에게서 받던 호감은 시간이 지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고, 그는 시종일관 외부를 향해 손을 내밀며 버둥거렸다. 돈을 살포해 타인의 마음을 붙잡으려 했다.

'이 세상을 '적과 아군'으로 나누어 사고하는 방식 이외에는 그 어떤 방식도 생각해 낼 수 없었던 단순 인격체 전두환'은(···) 자신을 중심에 놓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고 확신하며 뜻한 일에 망설임 없이 덤벼들었다. 능력의 차원에서 '안 되는 것'과 윤리적 차원에서 '안 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았다.

샤롯데 대기실

딸아이는 영화 표도 끊어주었다. 덕분에 난생처음 "샤롯데"라는 델 가보았다. 가격이 후덜덜했다.
평일에 경로 할인을 받으면 7,000원이면 되는데 샤롯데는 35,000원이었다. 커피와 물, 찹쌀떡 아이스크림이 제공되고, 좌석은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 같아서 호사스럽고 편하긴 했지만 영화 한 편 보려고 굳이 이런 비용을 지불해야 할까 싶었다. 아내는 "장돌뱅이 따라서는 절대 못 와볼 곳인데 딸 덕분에 경험한다"며 면박과 즐거움을 동시에 표했다.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 오신 날에  (0) 2023.12.16
곱단님 생일 축하합니다  (0) 2023.12.12
영화 <<오픈더도어>>와 <<잠>>  (0) 2023.12.09
대설  (0) 2023.12.08
겨울비  (0) 2023.12.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