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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겨울비

by 장돌뱅이. 2023. 12. 7.

아침부터 날이 꼬물거렸다.
소파 위에 누워 책을 읽다가 음악을 듣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했다.
아내가 외출을 한 뒤엔 혼자 강변을 걷는데 갑자기 뭔가 번쩍하는가 싶더니 때아닌 천둥소리와 함께 기여코 비가 쏟아졌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커피를 내렸다.
눅눅한 느낌을 향긋한 커피향이 거두어 갔다.

빈센트 반 고흐, <비(Rain)>, 1889년

겨울비 오는 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살았다

한 번도 울리지 않는 내 휴대폰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소파처럼
식탁과 마주 앉은 빈 의자처럼
혼기 놓친 여자 같은 계간지 표지처럼
뒷마당 대추나무 끝에 글썽글썽 맺혀 있던 빗방울처럼

옛 애인 같던 새벽녘 강릉 교동 택지 맥줏집도
교항리 간선도로변 생맥주 카스타운도
꾸득꾸득 말린 장치찜 큰 축항 월성집도
찬 소주 곁들인 도루묵찌개 주문진 터미널 포장마차도

다만 겨울비가 좀 내렸을 뿐인데
겨울비도 나도 변명하고 있었다.
너도 나도 서로 시절이 어긋났을 뿐이라고

- 강세환, 「겨울비 내렸을 뿐인데」-

맨날 노는 백수지만 겨울비 덕분에 좀 더 '격렬하게' 쉬어도 좋을 것 같았다.
조동진과 김범룡, 김종서의 "겨울비"를 반복해서 들었다.
내겐 특별히 변명할 거 없는, 어긋날 것도 없는 비오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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