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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어디서 술 생각이 간절한가

by 장돌뱅이. 2023. 12. 6.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라는 시 일곱 수를 남겼다.
'어디서 술 생각이 간절한가'라는 뜻이다.
내 마음대로 둘째와 넷째 수 중 일부를 발췌하여 합쳐보았다.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어디서 술 생각 간절한가?
天崖話舊情(천애화구정)  하늘가에서 옛정을 나눌 때라네. 
闇聲啼蟋蟀(암성제실솔)  희미한 소리로 귀뚜라미 울고
乾葉落梧桐(건엽낙오동)  오동나무에선 마른 잎이 떨어지는데
鬢爲愁先白(빈위수선백)  귀밑머리는 수심으로 먼저 희어졌구나.
此時無一盞(차시무일잔)  이러한 때 한잔 술이 없다면
何以敍平生(하이서평생)  무슨 수로 마음을 풀어보나.

너무 거창한 시를 인용했나?
그냥 부부 동반으로 송년회를 했다는, 술 한잔 없을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다. 

같은 홍어라도 잔치집과 상갓집에서 먹는 홍어맛은 다르다고 한다.
잔칫날은 예정되어 있어 시간이 충분하므로 좋은 홍어를 준비할 수 있지만 상갓집에서는 갑자기 준비해야하므로 제대로 숙성된 홍어를 내놓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애초부터 같은 홍어라도 왜, 어디서, 누구와 먹는가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새파랗던 귀밑머리가 희어지도록 만나온 사이라 술과 음식엔 맛이 더해지고 술자리는 편안했다. 

내가 선보였던 어설픈 마술에 사용한 카드
아내와 러브샷으로 나누는 커피와 차

시험 합격, 직장에서 승진, 결혼, 아니면 월드컵 4강 같은 엄청난 흥분과 기쁨은 생의 시간에서 그렇게 많지 않고 지속 시간도 짧다. 희소하고 짧아서 더 짜릿하게 기억에 남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맹물처럼 밍밍하고 무료한 대부분의 시간을 소소한 즐거움으로 채우며 살아야 한다.
기대한 맛을 내는 음식, 운전을 하며 듣는 좋아하는 음악, 가슴에 와닿는 시 한 구절, 산책을 하며 잡아본 아내의 따뜻한 손은 물론, 큰 의미가 있을 필요없는 실없는 농담과 장난까지······

소소한 즐거움과 어쩔 수 없는 아픔을 이야기하며 또 한 해가 갔다는 실감을 했다.
그래도 남아 있는 헛헛함은 따뜻한 봄날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으로 지우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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