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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영화 <<길위에 김대중>> 시사회

by 장돌뱅이. 2023. 12. 21.

영화 <<길위에 김대중>> 시사회에 다녀왔다.
영화는 일생에 걸쳐 확고한 민주주의와 평화주의, 그리고 의회주의의 원칙을 견지했던, 정치인이자 인간 김대중의 삶을 그리고 있다. 김대중은 '(실현 가능성이 없지만) 올바른 말을 하는 행위 자체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그 말이 현실에서 어떤 파급력을 지닐지 면밀히 짚어보고 치밀하게 준비를 한 뒤에 말을 내놓았다.' 한일국교정상화 같은 사안을 두고도 그는 무조건 반대하기에 앞서 우리가 그 과정에서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하며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를 제도 안에서 토론을 하자고 주장하여 같은 당에서조차 배척을 받기도 했다. 그의 성장 안정 분배를 강조한 대중경제론, 4대국 보장론, 남북비정치적접촉 등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환호와 박수 속에서 연설이 끝나고 나면 늘 외로움이 밀려왔다고 영화 속 김대중은 고백했다.
그의 일생에 집약된 우리 현대사의 모순이 강요한 아픔으로도 들린다.
그러나 그는 그 외로움을 웃음과 유모어, 화해와 용서로 바꾸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가 번역한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에 이런 글이 나온다.
글 속 '두려움'을 그의 '외로움'으로 대체해서 읽어도 다르지 않겠다.

나는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임을 배웠다. 나는 내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수없이 많은 두려움을 느꼈으나, 용기라는 가면 속에 두려움을 감췄다. 용감한 사람이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정복하는 사람이다.


영화와 달리 아직도 우리 사회의 어떤 사람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지역주의자', 심지어는 '용공주의자'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그를 박해하고 제거하려고 했던 독재자들이 언론들과 함께 조장하여 그에게 들러 씌운 왜곡된 이미지로 김대중은 단지 피해자일 뿐임에도, 정작 권력욕을 사로 잡힌 자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임에도, 그리고 그들이 불법적인 행위를 저질렀음을 우리 사회가 역사적·법률적 판단을 내렸음에도.
영화 <<식스 센스>>에서 눈이 맑은 꼬마 주인공 할리 조엔 오스먼트가 말했다.

"어떤 유령은 자기가 죽었다는 것조차 몰라요. 유령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봐요."


영화는 1987년의 대선 직전에서 끝난다.

 


*영화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6월항쟁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끝내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은 김대중과 김영삼을 보며 보수 야권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 김영삼은 물론 김대중도, 그 어떤 논리로도, 국민의 여망을 저버린 그때의 과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뒤로 나는 당장은 미약하더라도 새로운 씨앗을 싹 틔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선거 때마다 진보정당을 지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작년 대선 이후 1987년과 같은 비슷한 이유로 진보정당(정확히 정의당)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다. 진보정당의 요즈음 행보를 보면 그 판단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 될 것 같다. 그들에겐 자신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보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아니다. 너무 점잖게 표현했다. 그냥 '니 꼬라지를 알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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