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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4

병실에서 18 딸아이네가 병원에 다녀갔다. 코로나 때문에 병실에는 올라올 수 없고 일층 로비에서 잠깐 볼 수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 아내가 거동을 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물론 사전에 전화를 주었다면 아마 오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오고 가는데 소비하는 시간에 비해 만나는 시간이 너무 짧아, '가성비'가 안 나오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을 간파한 딸아이는 도착 10분 전에 전화를 주어 거절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한동안 영상통화로만 보던 손자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친구들을 찰지게 안았을 때 느껴지는 보드랍고 달달하고 살가운 감촉, 꼬숩고 꼬수운 냄새······ 한 달 사이 손자 1호는 '형아' 티가 많이 났고 말하는 것도 의젓해졌다. 2호는 고무공처럼 통통거림이 늘어 함께 오래 놀아도 즐거울 것.. 2022. 9. 3.
병실에서 17 Sleepless in Hospital. 간밤은 입원이래 가장 '잠 못 드는 밤'이었다. 며칠 동안 낯이 익었던 사람들이 퇴원을 하고 맞은편에 환자 A와 B가 새로 들어왔다. A는 처음엔 조용했지만 수술을 받고 난 후에는 목소리가 커지고 조금은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나중에 그것이 수술 후에 가끔씩 나타난다는 섬망(譫妄)의 초기 증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B는 들어올 때부터 요란스러웠다. 공용 냉장고를 자신이 가져온 과일로 채우는 것으로 위세(?)를 과시하더니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커다란 목소리로 자신들의 입원을 알렸다. 손주들과 통화를 할 때도 병실이라는 상황은 고려하지 않는 듯했다.아내가 화장실에 들어가 사용 중이라는 알림등이 켜있는데도 거침없이 문을 잡아 흔들거나 전등불을 꺼버리기도 했다.. 2022. 9. 2.
병실에서 15 "하늘정원에 가봤어요?" "예, 병실에만 갇혀있다가 초록 나무들을 보니 기분이 새롭데요." 환자들의 휴식공간으로 마련된 옥상정원 이야기다.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그곳에 간다는 건 정형외과 병동에서는 거동이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는 의미다. 완치는 아니더라도 퇴원이 가까운 사람들이 나눌 수 있는 대화다. 누워있어야 하는 아내에게는 먼 여행지 같았던, 부러움의 공간이기도 했다. 오늘 아내와 '드디어!' 그 하늘정원을 걸었다. 한번 입원을 하니 '드디어!'를 붙여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입원 전에는 그런 수식어가 전혀 불필요한, 일상이라고 이름 붙일 것도 없는 그냥 무의식적인 행위였던 일들에까지도. 몸의 기억력을 되짚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까지 몇 개의 '드디어!'가 더 필요할까? .. 2022. 8. 31.
병실에서 3 영화 『더 테이블』은 카페의 한 테이블에 하룻 동안 거쳐간 네 쌍, 8명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헤어진 이후 유명 여배우가 된 옛 여친과 그런 사실을 주위에 알려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푼수끼 다분한 옛 남친의 만남. 우연히 하룻밤을 같이 보낸 남녀의 재회. 가짜 사랑을 위한 가짜 모녀의 혼담, 결혼을 앞둔 여자와 남자 친구의 밀당. 사람들이 떠나면 커피와 음료 잔, 남은 케이크가 치워지고 다시 테이블만 남는다. 이야기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테이블은 어떤 흔적도 없이 산뜻하다. 곧 누군가 다시 그 자리를 앉아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카페의 테이블은 병실에선 침대다. 갖가지 고통과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와 그 자리에 눕는다. 병실의 사람들과 병의 이력을 나누고 약간의 동병상련과 유대감을.. 2022.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