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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병실에서 17

by 장돌뱅이. 2022. 9. 2.

"Sleep" (1872) by William Powell Frith


Sleepless in Hospital.

간밤은 입원이래 가장 '잠 못 드는 밤'이었다.

며칠 동안 낯이 익었던 사람들이 퇴원을 하고  맞은편에 환자 A와 B가 새로 들어왔다. 
A는 처음엔 조용했지만 수술을 받고 난 후에는 목소리가 커지고 조금은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나중에 그것이 수술 후에 가끔씩 나타난다는 섬망(譫妄)의 초기 증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B는 들어올 때부터 요란스러웠다. 공용 냉장고를 자신이 가져온 과일로 채우는 것으로 위세(?)를 과시하더니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커다란 목소리로 자신들의 입원을 알렸다. 손주들과 통화를 할 때도 병실이라는 상황은 고려하지 않는 듯했다.아내가 화장실에 들어가 사용 중이라는 알림등이 켜있는데도 거침없이 문을 잡아 흔들거나 전등불을 꺼버리기도 했다.

간병인으로 따라온 B의 남편도 안하무인에선 비슷했다. 병실 내 공용 전등을 다른 사람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무턱대고 끄기도 하고 10시 이후의 'Quiet Time'에도 아내인 B와 나누는 대화의 톤을 낮추지 않았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 같았고,  자기는 인공관절 수술을 하지 않고 1천8백만 원을 들여 의료보험이 안 되는 줄기세포로 치료를 받았다고 주변 환자들에게 자랑을 하는 걸 보아 재산도 없어 보이진 않았다.(물론 그 정도로 재산 유무를 추정하는 건 무리이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A와 B가 가까워졌다. 침상을 나란히 하고 있는 이유도 있겠지만 종교가 둘 다 기독교이고 같은 목사를 알고 있다는 공통점에  관계의 급속한 진전을 이룬 것 같았다. 그 목사의 설교가 너무 좋았다는 칭찬 릴레이도 이어졌다. A는 간호사와 의료진의 잘못과 무례를 강한 어조로 반복해서 성토했고 B는 '저한테 다 털어놓으시라고, 말씀을 하시면 편해진다' 고 위로를 했다. 급기야 B는 A에 대한 호칭을 언니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고 젊었을 땐 곱고 무척 미인이셨겠다는 덕담까지 건넸다. 의식하지 않아도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올 정도로 큰 소리라 저절로 알게 되었다.
좀 시끄럽긴 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여기까진 미담이라면 그래도 미담이었다.


그런데 밤이 깊어면서 A의 섬망 증세가 심해졌다.  수시로 비상벨을 눌러 간호사를 호출했고 나중에는 간호사를 '아가씨'라고 소리쳐 부르기도 했다. A는 달려온 간호사에게 항아리 소리가 계속해서 난다는 황당한 불만을 토로했다. 간호사가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이 소리가 안 들리냐?"고 고집을 피웠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A의 아들과 간호사가 대책을 논의하는 중에 갑자기 옆자리에 있던 B가 끼어들었다.

"이 사람(A) 좀 다른 데로 보내주세요.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A는 결국 병실 밖 치료실로 나가야 했고 끈끈해 보이던 A와 B의 관계는 그렇게 '허무개그'로 끝이 났다.
아내와 나는 A의 섬망만큼이나 B의 돌연한 변심이 놀라웠다. 

A가 병실에서 나간 후 B는 남편과 볼륨을 낮추지 않는 음성으로 대화를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는 듯하다가도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인가 별 것 아닌 일로 간호사를 부르기도 했다.  잠자리에 든 다른 사람은 별로 의식하지 않는 B 부부의 TMT는 아래  설명하는 '코파'와 더불어  밤새 병실의 어둠과 고요를 지배했다. (B는 뒷날 아침 퇴원을 하면서 A를 포함한 병실 누구와도 짤막한 눈인사나 흔한 덕담 한 마디 나누지 않고 시선을 정면으로 향한 채 병실을 걸어나갔다.)

아내의 잠을 지켜준 '귀마개'와 딸아이가 보내준 담요

옆자리에 있는 할머니는 지방 도시에서 올라온 분으로 두 달째 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발목 수술을 받은 지 한참 되어 활동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간병인 없이 혼자 생활했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구수한 말솜씨로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아내와도 잘 지냈다. 할머니라고 하지만 아내보다 세 살 위일 뿐이라 동년배나 마찬가지였다. 이튿날 퇴원을 위해  역시 지방에서 사는 아들이 올라와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   아들은 '코파'였다. 그것도 강력한 파워의 엔진 소리를 내는.
「코파와 비코파」는 윤흥길의 소설 제목으로 코를 고는 사람과 골지 않는 사람을 지칭한다. 하필 우리 쪽으로 향해 무차별 발사하는 코파 아들의 강력한 파열음을 막아내기에 얇은 병실 커튼은 무기력했다. 아내는 궁여지책으로 MRI 촬영 때 받은 귀마개를 찾아내 장착해야 했다. 

나는 휴지를 뭉쳐 임시 귀마개를 만들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B 부부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식 대화와 옆자리 코파의 공세가 더해지면서 잠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정신이 집중이 안돼 책을 읽는 것도 힘들었다. 어느 순간 숨결이 잦아든 아내가 깰까 조심스레 자리를 빠져나와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와도 변한 건 없었다. 할 수 없이 자리에 누워 묵주기도를 해보았다. 다른 때는 2단을 못 넘기고 잠이 들었지만 기도를 다 마쳐도 잠은 찾아오지 않았다. 어찌어찌 4시가 넘어 살포시 잠이 들었지만 간호사들이 환자 체크를 시작하는 기척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아침에 옆자리 할머니는 아들의 코골음에 사과를 했다. 자신도 신경이 쓰여 혼났다고.
앞자리의 간병인 아들도 어머니의 섬망 소동에 민안함을 표했다. 
섬망과 코골음을 잘못이라 할 순 없다. 본인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아내는 괜찮다고 두 사람에게 말해주었다.
옆 할머니는 퇴원을 하며 아내와 전화번호를 교환하자고 했다.

할머니의 도시를 여행하게 되면 콩나물국밥이라도 한 그릇 나누기로 약속하면서.

떠날 사람이 떠난 오늘 저녁엔 멀리 갔던 잠이 밀린 길을 벌충하느라 서둘러 돌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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