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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병실에서 14

by 장돌뱅이. 2022. 8. 30.


아내는 넘어져 다친 것을 오로지 자신의 실수라고 자책을 하곤 한다.
나는 실수가 아니라 불운일 뿐이라고 말한다.
실수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불운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다. 
실수의 책임 소재가 자신이라면 불운은 인간의 책임이 아니다. 그 '놈'들은 계획이나 준비가 없는 틈새로 느닷없이  찾아와, 자기들의 방식대로 애먼 사람의 삶을 휘저어 놓는다. 이럴 땐 비를 내리는 저 구름 위에 있다는 그 '양반'에게 언성을 높여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당신은 크고 작은 일에 직무유기를 하고 있거나 무능력하거나······  그렇지 않고서야 '불운'들이 횡행하며 벌인 망나니 짓들로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워질 수 있겠는가? 오래된 영화 『포세이톤 어드벤처』속 스콧 목사가 말하지 않던가요? 도와달라고 안 할 테니 방해나 하지 말라고······ 그래도 이 좋은 계절에 허접한 병원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는 억울함을 빌미로 험담이라도 퍼부울 수 있는 당신 같은 호구가 하나 있는 건 다행이요만." 


지금, 하늘에 계신다 해도
도와주시지 않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의 나라를 우리 섣불리 믿을 수 없사오며
아버지의 하늘에서 이룬 뜻은 아버지 하늘의 것이고
땅에서 못 이룬 뜻은 우리들 땅의 것임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보시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고통을 더욱 많이 내려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미움 주는 자들을 더더욱 미워하듯이
우리의 더더욱 미워하는 죄를 더, 더더욱 미워하여 주시고
제발 이 모든 우리의 얼어 죽을 사랑을 함부로 평론하지 마시고
다만 우리를 언제까지고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둬, 두시겠습니까?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이제 아버지의 것이
아니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보시오)
밤낮없이 주무시고만 계시는
아버지시여
아멘 

- 박남철, 「주기도문,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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