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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3

너무 지당한 말씀의 『산산조각』 '국민학교' 시절 매주 월요일의 애국조회, 교장선생님의 훈화는 길었다. 지당하고 귀한 말씀이겠지만 친구와 나는 끝날 듯하면 이어지는 선생님 연설에 "에···"나 "또···"를 몇 번이나 나오는지 세며 지루함을 견뎌야 했다. 아침 햇살 속에 주변에 가끔 쓰러지는 아이가 있어도 '다아! 너희들을 위해!' 하는 말씀은 음의 높낮이도 흔들리지 않고 느릿느릿 계속되었다. 정호승의 『산산조각』에는 그런 지당한 말씀들로 가득하다. 가수 김광석의 노래 중에 이 있던가. '지당'도 너무 많거나 노골적이면 '지당'이 아니게 된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고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긍정과 순명(順命)의 내공은 내게 어렵다. 솔직히 '지당'을 넘어 '황당'까지 느껴진다. 나는 정호승이 이런 소재들을 .. 2023. 8. 5.
전라도의 절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습니다사랑도 나를 가득하게 하지 못하여고통과 결핍으로 충만하던 때 나는 쫓기듯 땅끝 작은 절에 짐을 부렸습니다 새심당 마루 끝 방문을 열면그 안에 가득하던 나무기둥 냄새창호지 냄새, 다 타버린 향 냄새흙벽에 기댄 몸은 살붙이처럼아랫배 깊숙이 그 냄새들을 보듬었습니다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고잃어버린 사람들을 그리며 나는아물지 못한 상실감으로 한 시절을오래, 휘청였습니다 ······색즉시고옹공즉시새액수사앙행식역부우여시이사리자아아시이제법공상불생불며얼 ······ 불생불멸······ 불생불멸······ 불생불멸······ 꽃살문 너머반야심경이 물결처럼 출렁이면나는 언제나 이 대목에서 목이 메곤 하였는데 그리운 이의 한 생애가잠시 내 손등에 앉았다가 포르르.. 2020. 7. 30.
지난 국토여행기 3 - 선암사에서 굴목이재를 넘다1 초등학교 시절 한강변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고 행주산성으로 소풍을 간 적이 있다. 아마 부모님이 아닌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첫 번째 기차여행이었을 것이다. 조바심을 치며 기다린 끝에 마침내 기차가 역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할 때의 설레임과 흥분은 당시로서는 다른 무엇으로도 경험할 수 없었던 짜릿한 감정이었다. 기차여행은 50대 초반인 아내와 나의 세대가 지닌 여행의 어떤 원형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때문인지 아내와 오래간만에 남도여행을 위해 순천행 열차에 오르면서 “그래 역시 여행은 기차로 해야지!” 라고 말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새마을호에 이어 기차 서열(?) 2위를 지키다 이제는 고속철도라는 첨단의 기종에 또 한 계단 더 밀려났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무궁화호는 어린 시절의 추.. 2012.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