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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너무 지당한 말씀의 『산산조각』

by 장돌뱅이. 2023. 8. 5.

'국민학교' 시절 매주 월요일의 애국조회, 교장선생님의 훈화는 길었다.
 지당하고 귀한 말씀이겠지만 친구와 나는 끝날 듯하면 이어지는 선생님 연설에 "에···"나  "또···"를 몇 번이나 나오는지 세며 지루함을 견뎌야 했다. 아침 햇살 속에 주변에 가끔 쓰러지는 아이가 있어도 '다아! 너희들을 위해!' 하는 말씀은 음의 높낮이도 흔들리지 않고 느릿느릿 계속되었다.

정호승의 『산산조각』에는 그런 지당한 말씀들로 가득하다.
가수 김광석의 노래 중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있던가.
'지당'도 너무 많거나 노골적이면 '지당'이 아니게 된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고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긍정과 순명(順命)의 내공은 내게 어렵다. 솔직히 '지당'을 넘어 '황당'까지 느껴진다. 

나는 정호승이 이런 소재들을 압축하여 시로 썼으면 더 좋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 그는 이미 『산산조각』 전체를 줄였다고 해도 좋을 시를 쓴 적도 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정호승, 「수선화에게 」-

(*『산산조각』은 영상독서모임 "동네북"의 추천도서로 읽었다.)

책  속의 글 중「선암사 해우소 」와 「낙산사 동종」, 그리고 「하동 송림 장승은 조금 오글거리는 느낌으로 읽긴 했지만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올 가을에는 오래간만에 이들 중 한두 곳은 다녀오고 싶다.

*선암사 뒷간 (*이전 글 :  선암사에서 굴목이재를 넘다1)


*낙산사 (*이전 글 참조 : 아! 양양 낙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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