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심호택3

내가 읽은 쉬운 시 133 - 심호택의「방학숙제」 동무들과 망둥어 낚으러 오가는 길 어느 날 벼포기 알 배고 논두렁콩 매달리면서 들판 건너 하늘 훤하게 떠오르면 여름도 그만이다 개학 날짜 다가오는 것 웬수 같아라 밀려 나자빠진 방학숙제 학교 가기 하루 전날 그날도 저녁먹고 나서야 주섬주섬 챙기는데 일기 쓰기 제일로 골치아퍼라 한달 것 한나절에 지어내기도 막막하거니와 그증에서도 고약한 일은 찌푸렸다 갰다 그날 그날 날씨 모르겠는 것 가물거리는 등잔불 아래 모기 뜯기며 고민하는 모양 안되었던지 동네 마실꾼까지 거들고 나서는데 한달 전 그때 비왔느니라― 무슨 소리냐 땡볕에 까치란 놈 대가리 깨지겠더라― 아니여 아니여 비가 오락가락했느니라 ― 밤은 깊어가고 졸음은 쏟아지고 제기랄 것 누구 말을 들어야 하나 노노스쿨의 개학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방학이라서 좋.. 2019. 8. 16.
내가 읽은 쉬운 시 40 - 심호택의 「그 아궁이의 불빛」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리얼리즘의 복권전"을 아내와 관람했다. 80년대 민중미술이란 이름으로 낯이 익은 그림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중에「활목할머니」 - 이종구화가의 고향인 충청도 오지리의 실존 인물. 고향의 어린 시절 치맛자락으로 콧물을 닦아주시던 할머니 같은. 따뜻하고 아늑한 '그 아궁이의 불빛'같은. 그런 설날 연휴. 달아오른 알몸처럼 거룩한 노래처럼 그 아궁이의 불빛이 아직 환하다 푸른 안개자락 끌어덮은 간사짓벌 갈아엎은 논밭의 침묵 사이로 도랑물 하나 어깨를 추스르며 달아나고 기러기떼 왁자지껄 흘러갔다 목도리 칭칭 동여맨 아이들 저녁연기 오르는 집에 어서 가자고 재잘거리며 흩어진 하교길 진창에 엉긴 서릿발이 저문 달구지 바퀴에 강정처럼 부서질 때 짚검불이 숨죽이며 타오르는.. 2016. 2. 9.
옛날에 금잔디1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리 싸리빗자루 둘러메고 살금살금 잠자리 쫓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어 들어오던 날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먹을 것 없던 날 -심호택의 시, "그만큼 행복한 날이" - 2012.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