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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5

선한 사람들 미국에서 살 때 가까이 지냈던 빨간내복님의 따님이 결혼을 했다.식순이 다 끝났다, 돌아서 하객들에게 절하는 새 부부에게, 힘찬 박수로 축하를 보냈다콩꺼풀이여 벗겨지지 말지어다흰콩꺼풀이든 검정콩꺼풀이든 씻겨지지 말지어다색맹(色盲)이면 어때 맹맹(盲盲)이면 또 어때한평생 오늘의 콩꺼풀이 덮인 고대로 살아갈지어다어떻게 살아도 한평생일진대불광(不狂)이면(不及)이라지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느니이왕 미쳐서 잘못 본 이대로변함없이 평생을 잘못 볼지어다잘못 본 서로를 끝까지 잘못 보며서로에게 미쳐서[狂]행복에도 미칠[及] 수 있기를빌고 빌어주며 예식장을 나왔다, 기분 좋은 이 기쁜 날. - 유안진, 「콩꺼풀」-빨간내복님 부부도 우리처럼 무남독녀 외동딸을 키운 터라 결혼식을 지켜보는 마음이 행복하고 즐거우면서도 어딘가.. 2024. 9. 11.
꿈꾸는 5월 딸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춤동아리에 들고, MT를 가고, 술을 마시고, 배낭여행을 하며 별다르게 사회에 눈을 주는 일 없이(줄 틈 없이) 즐기듯 대학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다.그런 딸아이는 아직 사회 초년 시절이었던 봄, 그 일을 겪으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딸아이는 장례식이 끝나고 덕수궁 앞 분향소가 강제로 철거될 때까지 매일 퇴근 후 그곳을 찾아가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자신과 자신이 살아온 세상에 대해 질문을 시작했던 것 같다.한 나라의 대통령이 왜 비극적인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는가?  그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그와 측근이 뒷구멍으론 뇌물을 챙긴 파렴치한 일뿐이라고 온갖 언론이 보도를 하는데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 2024. 5. 24.
감은사 터에 흐른 시간 경주에 가면 늘 감은사( 感恩寺) 터를 빼놓지 않는다. 바닷가 가까운 야트막한 언덕의 폐사지엔 커다란 3층 석탑 2기만 남아 있다. 석탑은 가까이 다가설수록 육중해지고 우뚝해진다. 천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온 굳건함과 폐사지를 쓰다듬는 자상함의 농도가 언덕을 올라가면서 점점 진하게 몸을 감싼다. 동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곳에 앉아 탑을 바라보거나 탑돌이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그 느낌이 좋아 경주에서 가까운 울산에 살 때, 그리고 울산을 떠나온 후에도 감은사 터에 여러 번 갔다. 어린 딸아이와 함께 가고, 아내와 둘이서도 갔다. 지금 딸아이네 가족이 경주를 여행 중이다. 딸아이는 아이들을 감은사 터에 데리고 가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라고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 2023. 9. 7.
그들이 살고 있어도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넷플릭스에서 "지구 상의 위대한 국립공원"이란 5부작 자연 다큐시리즈를 보았다. 다큐는 아프리카 해변부터 일본, 칠레 파타고니아, 케냐의 차보, 미국 캘리포니아 몬테레이 만(灣), 인도네시아 구능 레우스르에 사는 다양하고 진귀한 동식물들을 보여주었다. 또한 인간과 함께 사는 생명들에 대한 관심과 경의, 그들의 생존을 위해 인간들이 해야 할 '무엇'을 말해 주었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 있고 들리지 않아도 소리 내는 것이 있다 땅바닥을 기는 쇠비름나물 매미를 꿈꾸는 땅 속 굼벵이 작은 웅뎅이도 우주로 알고 사는 물벼룩 장구벌레 소금쟁이 같은 그것들이 떠받치는 이 지구 이 세상을 하늘은 오늘도 용서하신다 사람 아닌 그들이 살고 있어서 - 유안진, 「용서받는 까닭.. 2022. 5. 9.
내가 읽은 쉬운 시 162 - 유안진의 「밥해주러 간다」 손자친구를 보러 가거나 영상 제작 수업에 참석하거나 헬스클럽에 가는 등의 정해진 일을 빼곤 새로운 약속을 삼가고 있다. 밖에서 돌아올 때마다 평소보다 좀 많은 양의 장을 본다. 외출을 최소화 하려는 의도다. 바이러스 때문이기도 하고 아내의 컨디션이 좀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이서 책을 읽고 텔레비젼을 보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이럴 때 음식을 만들고 아내와 함께 먹는 일은 오붓하다. 삶을 같이 한다는 건 밥을 같이 먹고 잠을 같이 잔다는 말이다. 음식엔 먹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준비를 하는 즐거움도 들어있다. 아내의 취향을 떠올리며 양념을 조절하는 시간은 감미롭고 평화롭다. 혼자 있으면 식사는 그냥 빈속을 채우는 기계적인 행위가 된다. 간단히 사먹거나 인스탄트 식품을 데워 먹는다. 상대가 .. 2020.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