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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3

병실에서 19 나이 든 나무는 바람에 너무 많이 흔들려보아서 덜 흔들린다 - 장태평, 「나이 든 나무」- 거대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먼 남쪽에선 태풍이 가공할만한 상처를 남기며 지나가고 있다는 속보가 속속들이 전해진다. 나이 든 나무는 모진 비바람에도 정말 덜 흔들릴 수 있을까? 지난달 아내의 불운과 입원. 잠시 흔들렸으되 크게 흔들리진 않았던 것 같다. '나이 든 나무'를 닮은 기특한 아내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주었다. 하늘정원에 갔더니 보슬비가 내려서 산책이 불가했다. 냉랭해진 기온을 느끼고 돌아왔다. 오늘부터는 아내의 걷는 시간을 기록하기로 했다. 일단은 한 번에 30분부터 시작. 좀 더 자주. 그리고 좀 더 길게. 2022. 9. 4.
병실에서 15 "하늘정원에 가봤어요?" "예, 병실에만 갇혀있다가 초록 나무들을 보니 기분이 새롭데요." 환자들의 휴식공간으로 마련된 옥상정원 이야기다.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그곳에 간다는 건 정형외과 병동에서는 거동이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는 의미다. 완치는 아니더라도 퇴원이 가까운 사람들이 나눌 수 있는 대화다. 누워있어야 하는 아내에게는 먼 여행지 같았던, 부러움의 공간이기도 했다. 오늘 아내와 '드디어!' 그 하늘정원을 걸었다. 한번 입원을 하니 '드디어!'를 붙여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입원 전에는 그런 수식어가 전혀 불필요한, 일상이라고 이름 붙일 것도 없는 그냥 무의식적인 행위였던 일들에까지도. 몸의 기억력을 되짚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까지 몇 개의 '드디어!'가 더 필요할까? .. 2022. 8. 31.
병실에서 1 조금 더 멀리까지 바래다줄 걸 조금 더 참고 기다려줄 걸 그 밥값은 내가 냈어야 하는데 그 정도는 내가 도와줄 수 있었는데 그날 그곳에 갔어야 했는데 그 짐을 내가 들어줄 걸 더 오래 머물면서 더 많이 이야기를 들어줄 걸 선물은 조금 더 나은 것으로 할 걸 큰 후회는 포기하고 잊어버리지만 작은 후회는 늘 계속되고 늘 아픕니다 - 정용철, 「착한 후회」- 구급차를 불러 타고 응급실에 도착하여 새벽까지 검사를 받고 입원실로 올라온 첫날밤. 가까스로 잠든, 아마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있을 아내를 바라본다. 크고 작은 후회가 밀려온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후회다. '착한 후회'란 변명이고 미화다. 있었다면 다만 잘못이 있었을 뿐이다. 더 길게 기다리고, 더 가만히 듣고, 더 자주 고개를 끄덕이고, 더 따.. 2022.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