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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6

커피점 한담 가을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더니 날이 추워졌다.아내와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아침 산책을 하다가 커피점에 들렸다. 왜 같은 장소라도 스타벅스가 되면 그냥 카페일 때보다 손님들이 많은 것인지?제법 이른 오전인데도 '별다방'은 사람들로 이미 만원이다.따끈한 커피잔을 손으로 감싸 쥐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요즈음  같이 읽고 있는 노벨문학상 작가 한강의 소설을 아내와 이야기했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5·18과 4·3.온 세상을 뒤덮을 듯 내리는 눈. 고립과 단절. 침묵과 정적. 섬뜩한 폭력과 학살. 그 속에 작은 새처럼 연약한 생명들의 처절한 몸부림. 해묵은 상처와 치유."한 문장 한 문장에 마음이 저리네."아내는 그래서 읽는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역사는 건조하게 한 시대를 요약한다면 .. 2024. 11. 18.
기름집 사장님 누님이 보내준 들깨를 자루에 담아 집 근처 시장에 있는 기름집으로 갔다.들깨 껍질 제거를 하기 위해서였다.이 작업을 아내는 '기피'라고 했고 기름집 늙은 사장도 그렇게 말했다.껍데기를 제거하는 일이면 '기피'보다는 제피(除皮)가 맞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에 사전을 찾아보니 거피(去皮)를 편하게 발음하면서 굳어진 말이라고 한다. 국립국어원 표준 사전에는 올라있지 않은 단어였다.기름집 사장은 들깨를 보더니 알이 잘아서 두 번 기피를 해야 한다고 했다.뭐가 다르냐고 물었더니 두 번 기피를 하면 날라가는게 많아서 양이 작아지는 대신 깨끗한 색의 가루를 얻을 수 있고, 한번 기피를 하면 색이 거무튀튀해지고 질감이 거칠지만 남는 양이 많고 건강에는 더 좋다고 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어서 전화를 걸어.. 2024. 11. 14.
여기가 어딘가다 목련에 이어 벚꽃이 피더니 이내 흩날리듯 사라지고바람결에 묻어오는 라일락 향기와 함께 발길 닿는 공원 곳곳에 철쭉이 눈부시다.사람들이 옮겨 심고 가꾸었다 해도 꽃은 스스로 피어난 것이다.십일 넘어가는 꽃이 없다 하지만 저 맹렬함을 누가 덧없다 말할 수 있으랴. 짧아서 진하고 더 강렬한 꽃길을 아내와, 그리고 가끔은 마음을 나누는 이웃과 함께 걸었다.↓공원은 바삐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해찰을 부리는 곳이다. 더군다나 꽃이 있는 시공간임에랴 ······.↓한강변을 따라간 햇살이 좋은 날에는 윤슬이 반짝여  강물도 꽃이 된다. 아내와 가만히 앉아 그런 강과 오고 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도 그렇다. 서울숲의 튤립은 작년에 비해 성기게 심어져 있었다. 아쉬워하다가 듬성듬성 빈 공간이 여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 2022. 4. 29.
한강변 100km 걷기 산책은 아내와 나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산책은 산(살아있는) 책'이라고 했다. 한 발 한 발 구름과 하늘과 바람, 나무와 숲을 느끼며 걷는 것보다 더 나은 배움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산책은 혈액 순환이나 열량 소비를 위한 런닝머신과는 다르게 풍경을 체험하게 한다. 시간과 거리에 구애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자유로움도 그렇다.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걸어도 느낌은 늘 새롭다. 가끔씩 시간과 거리를 정하고 걷는다. 산책 보다 강도를 조금 높게 잡는다. 걷는 행위에 자극이 되고 목표가 있으니 성취감도 생기기 때문이다. ( https://jangdolbange.tistory.com/1048 ) 추석 전 하루 25km씩 나흘 동안 100km를 걸었다. 1일차 : 동쪽 방향 한강이 흐르는 방향과 반대로.. 2020. 10. 2.
내가 읽은 쉬운 시 128 - 한강의 「어느 늦은 저녁 나는」 본격적인 여름이 되면서 낮보다 밤중에 아내와 산책을 나간다.저녁을 먹고 집 주변을 대략 3KM 정도 걷는다.어둠의 적요와 불빛의 활기가 공존하는 밤은 모든 것이 드러난 낮보다 오히려 더 다채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생각은 풍경을 닮는다고 했던가? 아니면 풍경에서 나온다고 했던가?걷는 길의 명암에 따라 감정도 미세하게 변화한다.밤이라 해도 요즈음은 습도까지 높은 장마철이라 천천히 걸어도 덥다. 더위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다. 흐르는 땀을 시원한 물로 씻어내는 즐거움으로 더위와 어울리는 것.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한다. 이내 더위가 가고 또 다시 소슬한 바람이 불 것이다."지금!" 하는 순간마다 그것은 영원히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기억이 된다.덧없다지만 그래도 어떤 무늬를 새길까 하는.. 2019. 7. 28.
내가 읽은 쉬운 시 73 - 이재무의「한강」 7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한 후 어느 날 우리 과에 한 '인물'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단과대 전체 차석(次席)이며 계열 수석 입학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보다 공부 잘하는 '놈'들이야 늘 있어 왔기에 나는 그가 누구인지 특별히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인물'의 위력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화학 실험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 날이었다. 노느라 바빠 숙제를 안 해 간 나는 옆에 있는 아무에게나 리포트 좀 빌려달라고 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몇몇을 빼곤 아직 이름도 잘 모를 때였다. 적당히 보고 베낄 속셈이었다. "리포트 해왔으면 잠시 빌려줄래?" 말을 건네자 상대방이 머뭇거렸다. "빌려주긴 하겠는데 ······ 베끼기가 좀······ 뭐 할 거 같.. 2017.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