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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한강변 100km 걷기

by 장돌뱅이. 2020. 10. 2.

산책은 아내와 나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산책은 산(살아있는) 책'이라고 했다. 
한 발 한 발 구름과 하늘과 바람, 나무와 숲을 느끼며 걷는 것보다 더 나은 배움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산책은 혈액 순환이나 열량 소비를 위한 런닝머신과는 다르게 풍경을 체험하게 한다.
시간과 거리에 구애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자유로움도 그렇다.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걸어도 느낌은 늘 새롭다.

가끔씩 시간과 거리를 정하고 걷는다.  산책 보다 강도를 조금 높게 잡는다.
걷는 행위에 자극이 되고 목표가 있으니 성취감도 생기기 때문이다.
( https://jangdolbange.tistory.com/1048 )


추석 전 하루 25km씩 나흘 동안 100km를 걸었다.

1일차 : 동쪽 방향

한강이 흐르는 방향과 반대로 걸었다. 올 가을은 날씨가 그만이다.
하늘 푸르기가, 구름 깨끗하기가, 햇살 맑기가, 바람이 부드럽기가 그지없다.

어디서건 멈춰서 핸드폰 셔터를 누르면 시원스런 풍경이 잡힌다.
깊은 들숨날숨을 쉬게 되고 가슴도 후련해진다.

코로나 때문(덕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건 코로나에 긍정적인 의미를 붙이긴 싫다.


2일차 : 서쪽 방향


한강의 흐름과 나란히 걸었다. 곳곳에 다양한 모양의 다리가 한강을 가로질러 있다.
화창한 날씨 탓인지 유난히 아름답게 보인다.
 

다리는 이곳과저곳을 연결하는 소통의 의미를 지닌다.
강남과 강북, 동과서, 남과북, 남과여, 젊은이와 늙은이, 부모와 자식, 아내와 남편 - 다리를 놓아야 할 곳은 많다. 
튼튼한 소통의 다리를 세우기 위해선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는 기본 공사를 우선 해야 할 것이다.


3일차 : 청계천 방향



재래시장과 성수동 수제화 거리를 지나 서울숲으로 들어서니 쭉쭉 뻗은 나무들이 싱싱하다.
강변길과는 다른 풍경이지만 마음이 후련해지는 건 같다.
모든 숲은 선(善)이다. 각박한 콘크리트의 빌딩숲을 빼곤. 



살곶이다리(箭串橋)는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곳에 있다.
성동구 사근동과 성수동을 이어준다.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제들을 죽이고 권좌에 오른 아들 태종과의 갈등으로 함흥에 머물던 (함흥차사,使)
이성계는 마침내 한양행을 결심하고 돌아오던 중 자신을 마중 나온 태종에게 화살을 쏜다.
태종은 차일을 치기 위해 세운 기둥 뒤로 몸을 피하고 화살은 그 기둥에 꽂힌다.
이에 이셩계는 '하늘의 뜻'임을 말하면서 태종을 인정하였다.
이후 사람들은 이곳을 '살곶이(화살이 꽂힌 곳)'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식을 '너님'으로 부르며 티격태격하면서도 함께 자주 여행을 하는 지인이 있다.
자주 어깃장을 놓는 '너'와 그래도 자식이라 상전처럼 받들어야 하는 '님'의 조합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 중의 하나가 자식 일이다.
'내일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라는 김소월의 시도 있다.
하지만 모든 부모는 결국엔 이성계가 그랬듯 자식을 이길 수 없다.
나 역시 '백전백승(?)' 부모를 이기며 살았던 '너님'이었다.




살곶이다리 가까이 있는 대학교는 내가 다닌 곳이다. 나는 강의실이나 도서관 보다는
학교 담장 밖 튀김집 막걸리와 소주가
더 기억에 남는, 별 볼 일 없이 시시한 학생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언젠가 농담처럼
"니가 제일 잘 한 일은 담배 끊은 것과 (지금의 아내와) 연애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어머니의 말씀이니 아내를 만난 그 시절이 내 삶의 가장 빛난 시절일 지도 모르겠다.
시시하거나 빛나거나 이젠 나 아니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나만의 길로 소중할 뿐이지만.

노랫말처럼 서산에 걸린 붉은 해를 바라보며 그 시절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왔다.

서산에 붉은 해 걸리고 / 강변에 앉아서 쉬노라면
낯익은 얼굴이 하나 둘 / 집으로 돌아온다
늘어진 어깨마다 / 퀭한 두 눈마다
빨간 노을이 물들면 / 왠지 맘이 설레인다

강 건너 공장의 굴뚝엔 / 시커먼 연기가 펴오르고
순이네 뎅그런 굴뚝엔 / 파란 실오라기 펴오른다
바람은 어두워가고 / 별들은 춤추는데
건너 공장에 나간 / 순이는 왜 안 돌아오는걸까

높다란 철교위로 / 호사한 기차가 지나가면
강물은 일고 일어나 / 작은 나룻배 흔들린다
아이야 불밝혀라 / 뱃전에 불밝혀라
저 강 건너 오솔길따라 /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라라라 라라라 노저어라 / 열여섯살 순이가 돌아온다
라라라 라라라 노저어라 /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아이야 불밝혀라 / 뱃전에 불밝혀라
저 강 건너 오솔길따라 /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김민기의 노래, 「강변에서」-


4일차 : 아차산 방향


강변길을 벗어나 아차산 쪽 길을 잡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길이다.
일단 어린이대공원을 관통하며 걸었다.



아차산과 용마산.
지금은 자동차 행렬과 빌딩들 너머로 쪼그라든 동네 야산에 지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엔 깊고 높은 험산이었다.
칡을 캐고 개암과 산딸기를 따며 사슴벌레(집게벌레)를 잡고 새집을 맡으러 온종일 쏘다니던 놀이터이기도 했다.
적어도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그랬다.



망우리공동묘지에는 우리 사회에 이름난 사람들의 묘가 많다.
만해 한용운을 위시하여 시인 박인환, 화가 이중섭, 소파 방정환, 송촌 지석영, 죽산 조봉암 등등.
망우산둘레길을 걷는 중에 길 바로 옆에 31세의 나이로 요절한 소설가 최서해의 문학비가 있었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겠다"던 그는 일제강점기의 '죽음과 직결된 가난'과 망국인의 비애와 울분에 대해 썼다.



저녁 어스름에 망우산 길에서 내려다 본 풍경.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오른쪽 삼각형으로 오똑한 산은 봉화산이다.

그리고 드디어 100km.
저녁상에 반주로 자축 소주를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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