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궁궐은 외국의 예에 비해 소박한 편으로 결코 화려하지 않다. 백성들이 보아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화려함이라고나 할까. 그 이유는 조선 건국의 이데올로기를 제시하고 한양의 도시 설계와
경복궁 건립을 주도한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찾을 수 있다.
궁원 제도가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고,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을 보여줄 수 없게 될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검소란 덕에서 비롯되고
사치란 악의 근원이니 사치스럽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할 것이다.
궁궐 건축에 대한 정도전의 이런 정신은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던 우리 궁구러의 미학이다. 일찍이
김부식은 『삼국사기』「백조 본기」 온조왕 15년(기원전 4) 조에서 백제의 궁궐 건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새로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新作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
그러고 보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아름다움은 궁궐 건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백제의 미학이자 조선왕조의 미학이며 한국인의 미학이다. 조선시대 선비문화를 상징하는
사랑방 가구를 설명하는 데 '검이불루'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고, 규방문화를 상징하는 여인네의
장신구를 설명하는 데 '화이불치'보다 더 좋은 표현이 없다. 모름지기 우리의 DNA 속에 들어 있는
이 아름다움은 오늘날에도 계속 계승하고 발전시켜 일상에서 간직해야 할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미학이다.
- 이상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에서-
눈 덮인 궁궐도 그랬다.
자연과 인공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화려하고 장엄했다.
잠시 '不儉'하고 不'不侈'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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