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멕시코 및 중남미

멕시코시티 (끝)

by 장돌뱅이. 2014. 5. 6.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 중의 하나가 빵 굽는 냄새다.
어릴 적 버스를 타고 청량리까지 나가 목욕을 마치면 아버지는 종종
‘무슨무슨당(堂)’이라는 빵집으로 나를 데리고 가곤 하셨다.
같은 서울이라고 해도 내가 살던 동쪽 끝의 마을에는 목욕탕도 없던 60년대 중반의 이야기다.

무슨 빵을 먹었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처음 빵집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온몸에 휘감겨오던 그 감미롭고 부드럽고 달콤한 냄새는 지금도 생생하다.
빵 냄새가 잘 나지 않는 현대식 프렌차이즈 빵집은 그래서 내게 큰 매력이 없다.

전날 저녁 숙소에서 가깝고 괜찮은 식당이 없을까 론리플래닛을 뒤적이다 보니
EL CARDINAL이라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BREAKFAST IS A MUST”라고 강조하는
문구를 기억하여 뒷날 아침 식사를 이곳에서 했다.

3층으로 된 분위기 있는 식당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어릴 적 추억의 빵집 냄새도
풍겨왔던 것 같다. 달콤한 Mexican hot chocolate에 먹는 갓 구워낸 빵도 어릴 적 황홀경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곳은 아침 이외에는 멕시칸 음식을 내놓는다. 오후 여섯시까지만 문을 여는지라
하루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와 이른 저녁도 이곳에서 먹었다. 소깔로에 가깝게 숙소를
잡았다면 한번쯤은 이곳에서 식사를 해보기를 권한다. 다른 곳에 숙소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멕시코시티 여행 중이라면 중심 지역인 소깔로를 지나칠 수 없을 터이니
그때를 위해 기억해 두어도 좋을 식당이다.

식사를 마치고 과달루뻬 마을의 바실리카(성당)로 향했다.
1531년 갈색 피부의 성모마리아가 마을 주민인 후안 디에고 JUAN DIEGO 앞에 나타난 곳이다.
성모는 후안 디에고에게 현현(顯現)의 증거로 장미와 성모 자신의 모습이 투사된 보자기를 주었다.
지금 바실리카에 걸린 그림이 바로 당시에 성모께서 하사하신 것이다.

정말일까? 의심과 의문이 동시에 드는 것은 나 같은 날나리 신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성모님이 나타나셨다는 유일한 증거물인 그림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그림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과학자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이 멕시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당시의 상황과 사실에 더 주목하고 싶다.

로마 교황청은 이곳의 기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같이 로마로부터 인정된 성모마리아의 현현은 이곳 외에 프랑스와 스페인에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기적이나 신비에 대한 추종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꾸려가는 역사와 삶의 사건 속에서 신이 계시하는 의미를 깨닫는 것이며,
그 과정에 신이 다양한 형태로 행동하시리라는 확신이 아닐까? 
 

어쨌거나 과달루뻬 성당은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찾는 곳이며,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순례자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원래 성모마리아의 그림을 모셨던 노란 지붕의 구 성당은 시간이 흐르면서 무른 지반 속으로
기울기 시작하여 그 옆에 멕시코 전통 모자 솜브레로를 닮은 둥근 형태의 새 성당을 짓게 되었다.

거대한 규모의 새 성당의 중앙 한 가운데 성모의 그림이 모셔져 있다.
제단 뒤쪽으로 돌아가면 성모의 그림을 좀 더 가까이에서 그림을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아내와 함께 사람들의 대열에 끼어 그 그림을 두세 번 반복하여 보았다.
(많은 관람객 소화를 위해 그림 앞에 무빙로드가 설치되어있다.)

이곳의 성모님은 우선 얼굴색이 우리가 자주 보아온 서양화가들의 그림과는 달리 원주민과 같은
갈색이었다. 오렌지 빛 광배를 배경으로 초록색 망토를 한 채 오른편으로 비껴서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무덤덤했지만 아내는 뭔가 따뜻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 같아 좋았다고 했다.

이곳이 원래 아스떼까의 여신을 모시던 제단이 있던 곳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카톨릭이라는 종교는 중남미의 많은 나라에서 그렇듯 멕시코에서도 식민지에 강제 이식된
침략자의 산물이 아니라 멕시코인들의 삶과 영혼을 움직이는 힘이 된 것이다.
국기에 감싸인 성모의 상은 아무래도 좀 어색해보였다. 하지만 과거 스페인에 맞서 독립전쟁을
치를 때에도 과달루뻬 성모상을 앞세웠을 정도라고 하니 멕시코에서는 과달루뻬 성모가 단순히
종교적 상징, 그 이상의 존재인 것 같다.

멕시코에서 발생한 문명 중 가장 강력하고 부유했다고 알려진 떼오띠우아깐 TEOTIHUACAN 은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약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의 기원은 BC 3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 속에서 이곳은 신들의 도시이자 죽은 왕이 신이 되는 장소였다.

이곳에는 ‘달의 피라미드’, ‘태양의 피라미드’ , ’께쌀꼬아뜰 신전‘, 그리고 크고 작은 건물군과
건물 사이를 가르는 큰길인 ‘ 죽은 자의 길’ 등이 있다. 이 도시는 최고 전성기에는
인구가 20만 명에 이르는 거대 도시였다고 하나, 7세기경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몰락하고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저런 멸망의 이유는 모두 추측일 뿐이라고 한다.

지금 발굴이 되어 방문객이 볼 수 있는 곳은 신전 구역일 뿐이고 도시의 대부분은
사라져 버린 상태이다. 사실 떼오띠우아깐이라는 이름도 수백 년 뒤 아스떼까인들이 붙인 이름으로
원래에는 어떤 이름이었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 달이니 태양이니 하는 피라미드의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해서 이곳은 페루의 마추삐추처럼 남아있는 건축물을 바라보며 상상으로 옛 사람과 소통하는 곳이다.

떼오띠우아깐 공원에는 3개의 출입구가 있다.
1번 출입구는 께쌀꼬아뜰 신전에서 가장 가깝고 떼오띠우아깐 유적의 실질적인 중심인
‘달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멀다. 3번 출입구가 '달의 피라미드'에 가장 가깝다.
거리가 좀 멀더라도 외곽에서 중심부를 향하는 게 순서겠다 싶어 우리는 그렇게 했다.

지리산으로 치면 천왕봉을 장터목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노고단에서부터 능선길(죽은 자의 길)을
걸어 반야봉도(태양의 신전) 들려보고, 칠선봉과 영신봉(기타 건물군)을 거쳐 정상(달의 피라미드)으로
향하는 것이다. 당연히 거리는 제일 멀다. 그늘이 없는 곳이라 땀도 나고 피라미드의 가파르고
긴 계단을 오를 때 아내는 다소 힘들어 하기도 했다.

께쌀꼬아뜰(깃털 달린 뱀)의 신전은 지난번 국립인류학 박물관의 떼오띠우아깐 실에서 기단을
보았던 신전이다. 박물관에서는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원래의 모습이 그랬다고 한다.
신전은 4개의 기단만 남아 있고 상층부는 허물어져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뱀 조각이 돌출된 장식의 계단 좌우와 기단부만으로 인상적인 곳이었다.

께쌀꼬아뜰에서 ‘태양의 피라미드’에 이르는 길은 네모난 돌담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여럿 지나야 한다.
물이 귀한 곳이라 이를 관리하던 시설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 것도 같다.

바닥과 담을 넘는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며 걷다 보니 ‘태양의 피라미드’ 앞에 닿는다.
피라미드는
한마디로 거대한 ‘돌무더기’이다. 기단이 가로 220, 세로 230미터로 정사각형에 가까우며
높이는 66미터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가장 크고 세계에서는 3번째로 큰 피라미드라고 한다.
기원전 200년 겨부터 시작하여 무려 350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쉬엄쉬엄 계단을 올라 꼭대기에 오르면 주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 올라 식당에서 준비해간 빵과 쥬스로 점심식사를 했다. 땀도 식히고 툭 트인 전망을
오래 즐기기 위해 만든 일정이었다.

‘태양의 피라미드’를 내려와 ‘죽은 자의 길’을 걸어 달의 피라미드로 향했다.
'죽은 자의 길'이란 길 양쪽의 건물을 묘로 생각한 아스떼까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에게 바칠 인간 제물을 운반한 길이라는 주장도 있는 모양이다.
사실이라면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이 긴 길을 걸어가야 했던 ‘제물’에게
이 도시와 하늘은 무슨 의미였을까? 상상을 하며 길을 걸으니 무서우면서도 애잔해진다.


*위 사진 : '죽은 자의 길'에서 본 '달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는 기원 후 500년경에 지어졌다. ‘태양의 피라미드’보다는 규모가 작고 높이도 42미터로 낮다.
그나마 중간 부위까지만 오르는 것이 허락되어 있어 오르기도 편하다. 그러나 피라미드에 올라 뒤를 돌아보면
‘죽은 자의 길’을 축으로 갈라진 도시의 정연한 모습이 시원스레 눈에 들어온다.
왜 이곳이 떼오띠우아깐의 중심인가를 저절로 알게 해주는 풍경이다.
피라미드에 올라 물로 갈증을 달래며 아내와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옛 사람들의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옛날 절대 권력은 거대한 유적들을 남겼다.
대부분 스스로가 하늘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존재임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세상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진 돌 유적의 거대함과 웅장함 혹은
정교함이나 섬세함을 직접 보고 탄복하기 위해 여행을 하곤 하지만,
가끔씩은 가파른 피라미드를 오르내리며, 권력의 치장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리는 고된 노동에
시달렸을 이름도 없는 숱한 사람들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묻게 된다.
권력은 무엇이며, 종교는 무엇인가? 또 국가는 무엇인가?
권력에 복종하는 것은 의무이고, 신에 대한 믿음은 의문이 없어야 하며, 애국은 무조건 신성한 것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돌무더기의 피라미드는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의미의 피라미드를
세우고 있지는 않는가? 오직 상층부를 향하여 법률과 제도를 정교하게 조각하여 쌓아올리고,
화려한 이데올로기와 선전으로 채색을 한 피라미드......

어쩌겠는가. 그래도 그곳은 돌아가야 할 곳이다. 내가 어디에 서 있건 그곳엔 삶이 있기 때문이다.
삶이 ‘사는’ 것만이 아닌, 때때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건 나이가 들면서 자주 드는 생각이다.
멀리 건너다 보이는 ‘태양의 피라미드’ 너머 구름 사이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나는 조심조심 피라미드의 계단을 딛고 내려왔다.

'여행과 사진 > 멕시코 및 중남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깐꾼 CANCUN에서  (0) 2014.10.08
바하마의 '날씨! 날씨! 날씨!'  (0) 2014.07.11
멕시코시티 4  (0) 2014.05.06
멕시코시티 3  (0) 2014.05.06
멕시코시티 2  (0) 2014.05.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