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선거가 끝나도 세월호는 남아있다

by 장돌뱅이. 2014. 6. 6.


*5월21일 손문상 화백의 그림

대학교수들과 대학생, 종교인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연이어 세월호 참사 관련한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은 해경 해체라는 자못 비장해 보이는 카드를 던졌지만,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것은 '처벌'에 앞선 정확한 사실규명일 것이다.

수많은 목숨들이 세월호에 갇혀 물속으로 가라앉는 동안
기업과 나라의 책임자들은 어떤 행동을 했으며, 왜 그러했는가를 밝혀내는 일
- '처벌'도 '국가개조'도 그 다음의 일이다.
사실규명에 따라 처벌의 강도도 
개혁의 방향과 내용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규명 없는 처벌은 우리나라의 지나간 많은 사건과 사고에서 보듯
도마뱀 꼬리자르기 식의 은폐이거나 기만, 책임회피의 또 다른 술책일 뿐이다.

2014년 6월2일,
우리나라의 소설가와 시인 754명이 세월호 참사와 우리의 현실에 대한 ‘문학인 시국선언’을 했다.
그 전문을 옮겨본다.

=============================================================

 “반성 없는 권력에 끊임없이 맞서겠다” 

우리는 이런 권력에게 국가개조를 맡기지 않았다

할 말을 잃은 시간이 자꾸 흘러가고 있습니다.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한지 한 달,
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참담한 광경들을 거듭 목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례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절실히 깨닫는 중입니다.
죽음과 삶에 대한 모든 존엄이 곤두박질치는 참혹한 나날을 겪고 있습니다.

권력은 언제나 우리 편이 아니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이 위기에 처한 가장 급박한 순간조차도
정권은 생명보다 자본의 이윤을 먼저 고려했고, 안전보다 정권의 유지에 연연했습니다.
언론을 통제하고 국민을 진압하면서 진실을 가리고 분노를 은폐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단 한 사람의 목숨도 구하지 못하고 수많은 의혹과 추문을 남겨둔 채로 대통령은 사과하면서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우리는 그 약속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국민의 알 권리를
막았을 뿐만 아니라, 유가족들의 항의와 요구를 경찰병력을 동원해 진압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돌아서서는 통제와 억압을 진두지휘하는 두 얼굴의 정부를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총리를 바꾸고, 정부 부처를 자르고 기워 개편하는 장막을 치는 것으로 우리가 겪은
참담한 재난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생명보다 이윤이 우선시되고, 경제적 효과를 기준으로
모든 가치를 줄 세우는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절대로 안전하지 않습니다.
생계를 이유로 국민을 길들이고, 소수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가리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생명과 존엄을 외치는 국민들의 분노를
진압하고 통제하는 권력을 우리는 더 이상 허용할 수 없습니다.
참사의 책임을 묻는 일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일과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참사를 잊지 않고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우리의 대책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습니다.
무너진 것은 국가 안전 시스템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슬픔을 공유하고 정당한 분노를
표현하는 일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참담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일의
뜨거움과 생명 가진 것들의 존엄 자체가 냉혹한 이윤과 차가운 권력 앞에서 침몰해 버렸습니다.
말의 질서와 말의 윤리를 믿는 작가들이 더욱 망연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힘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피폐를 응시하고자 합니다.
이미 우리 것이 아닌 국가가 아니라, 함께 사는 이웃들의 박해받는 슬픔이 가진 생명력을 믿고자 합니다.
여전히 말은 무력하고 인간을 위한 세상은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먼 곳이 반드시 가야 할 길임을 알기에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미처 말이 되지 못한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는 일이 작가의 몫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오랜 후에도 아물지 않고 남을 이 상처를 우리는 온몸으로
증언하고자 합니다. 상처를 가리고 말을 통제하는, 반성 없는 권력을 향해 끊임없이 맞서고자 합니다.

문학은 본래 세상의 모든 약한 것들을 위한 것이고 세상의 가장 위태로운 경계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 기억하고, 그치지 않고 분노하며 끈질기게 싸울 것입니다. 이러한 문학의 언어를
두려워 할 줄 아는 권력을 원합니다.
정권의 안위가 아니라 위임받은 권력의 책임에 민감한 정부를 원합니다.
이 정부를 허용하고 방임한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자인하며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정부의 책임을 묻겠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무능하고 진실을 억압하는 데는 능란한 정부의 자격을 캐묻겠습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서가 아니라 거리의 시민을 감금하고 시인의 입을 틀어막는 데
법이 소용되는 이 나라의 폭력과 야만을 규탄합니다.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나서는 오만과 착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누가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주었단 말입니까.
위임받은 권력으로 국가를 참칭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그 착각을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적 가치만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세월호에서 가족과 친구와 연인을 잃은 비통한 슬픔을 디딤돌 삼아
우리는 이렇게 다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존을 겁박하는 권력을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일상을 위협하는 모든 부정에 회피하지 않고 맞설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와 사랑을 자본에게 통째로 맡기는 걸 방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퍼뜨리면서 절망과 싸울 것이며 사랑을 지키면서 억압을 깨뜨릴 것입니다.
정의를 말하면서 협잡을 해체할 것이며 공동체를 껴안으면서 권력의 폭력을 고발할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위해서라면 피 흘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문학의 윤리이며 문학이 말하는 자유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현 정부에게 국민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명령합니다.
 

1.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유가족과 사회 구성원의 힘으로 밝히는 데 협조할 것.

1. 생명을 죽이는 모든 정책과 제도를 해체할 것.  

1. 공공재와 공유지를 정부가 나서서 보호할 것.

1. 정치권력과 관료사회에 누적된 부정과 부패와 거짓을 낱낱이 단죄할 것.

1. 거리와 광장에서 경찰을 모두 철수시킬 것.

1. 그리고 이 명령을 지체 없이 따를 것.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란치스코 교종(교황)과 함께 평화를 나눕시다(퍼옴)  (0) 2014.08.13
딸아이의 새로운 이름  (0) 2014.07.19
귀국 후 한달  (0) 2014.06.02
어느 해의 촛불집회  (0) 2014.05.18
꽃산 솟다  (0) 2014.05.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