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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9 - 함민복의「흔들린다」

by 장돌뱅이. 2014. 7. 6.


*잠시 거닐었던 대구 수성못


옛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앞선 글의 대구 결혼식에서처럼.

첫 직장의 사람들이라 30년 이상의 인연도 있고
얼굴을 본 지 십여 년이 된 사람들도 있다.

흔히 악수를 나누며 "하나도 안 변했네!" 하는
과장된 덕담을 건네지만
벗겨진 이마나 흰 머리, 주름진 서로의 얼굴에서
어쩔 수 없이 세월의 흔적을 읽어내곤 한다.
그런 자리에는 늘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의 소식도
들을 수 있는 법이어서 대화는 적조(積阻)의 공백을 넘어 수월하게 이어진다.

좋은 소식과 안타까운 소식은 뒤섞여 있으나
누구나 '지지고 볶으며' 생활에 얼룩져 사는 것은 비슷하다.
동물처럼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관계 속에 생활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 이상
티끌 하나 없는 맑은 하늘 같은 삶을 다듬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난 얼룩없는 깃털처럼 깔끔하고 가벼운 자유의 의미와 존재를 믿지 않는다.
상투적이고 진부하기 마련인 삶을 벗어나려는 자유에는
늘 연처럼 무겁고 긴 꼬리가 달려있을 수밖에 없다. 
아니 떼어버릴 수 없는 꼬리에 흔들리며
우리는 더 높은 자유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는 몸짓일 뿐이다.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밸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린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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