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21 - 정호승의「발에 대한 묵상」

by 장돌뱅이. 2014. 7. 15.

아내가 발을 다쳤다.
한달이 넘게 약식 기브스를 하고 양의를 거쳐 지금은 한방 치료 중이다.
뼈는 붙었다지만 아직 붓기가 가라앉지 않아 거동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덕분에 일상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뒤따랐다.
귀국 직후에 있게 마련인 국토여행에 대한 심한 갈증을 달래며 외부 활동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 대신 부엌에 서는 일이 많다 보니 나의 요리 메뉴가 몇 가지 더 늘어나기도 했다.  

어떤 일이 있고서야 비로소 절실하게 깨닫는 것들이 있다. 건강도 그렇다.
건강은 늘 '당연하거나 당연해야 하는' 것이어서 감사함을 잊고 지내기 쉽다.
그러나 몸 어느 한 부분에 이상이 생기면
그것이 그 부분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온몸이 함께 아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건강이외에 이와 비슷한 다른 것들도 함께 생각해 본다.

정호승의 시,「발에 대한 묵상」을 읽는다. 

   저에게도 발을 씻을 수 있는
   기쁜 시간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길 없는 길을 허둥지둥 걸어오는 동안
   발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뜨거운 숯불 위를 맨발로 걷기도 하고
   절벽의 얼음 위를 허겁지겁 뛰어오기도 한
   발의 수고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비로소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발에게 감사드립니다
   굵은 핏줄이 툭 불거진 고단한 발등과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은 발바닥을 쓰다듬으며
   깊숙이 허리 굽혀 입을 맞춥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의 가슴을 짓밟지 않도록 해주셔서
   결코 가서는 안되는 길을 혼자 걸어가도
   언제나 아버지처럼 함께 걸어가주셔서 감사합니다
   싸락눈 아프게 내리던 날
   가난한 고향의 집을 나설 때
   꽁꽁 언 채로 묵묵히 나를 따라오던 당신을 오늘 기억합니다
   서울역에는 아직도 가난의 발들이 밤기차를 타고 내리고
   신발 없는 발들이 남대문 밤거리를 서성거리지만
   오늘 밤 저는 당신을 껴안고 감사히 잠이 듭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