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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덕수궁 돌담길

by 장돌뱅이. 2014. 9. 19.

 

'덕수궁 돌담길’ 하면 한 때 대중가요에 자주 등장하던 곳이다.
노랫말은 주로 연인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지난 날에 대한
회상의 감정으로 애틋하고 달콤하다.

그러나 그런 '낭만과 추억의 거리'가 되기 전 이곳은 구한말 거세게 밀려오던
외세들의 치열한 세력 다툼의 중심지였다. 돌담길 자체가 주인 격인 덕수궁을
일제가 강점하면서 궁을 관통하는 도로를 만들고 땅을 나누어 팔아버리는
바람에 생겨난 길이었다.
 

 

 

 

 

성공회는 기독교의 한 교파이고 영국의 국교이다. 우리나라에는 1890년에 들어와
주로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 황해도 지방으로 전파 되었다. 지금의 성당 건물은
최초로 1926년에 지어졌고 1996년에 원 설계도에 따라 증축 되었다.

화강석과 붉은 벽돌의 외장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나는 이 건물은 “한옥의 양식이
서양의 건축 양식과 어우러져 묵직하고 중후한 외형감을 보여준다.”(답사여행의길잡이)
강화도 성당에서 보듯 많은 성공회 성당들이 우리의 전통양식을 채택한 것은
성공회의 우리 문화에 대한 포용과 토착화를 위한 노력을 보여주는 한 측면으로
당시 다른 교파의 기독교에서는 거의 보지 못한 일이다.
 

구 러시아 공사관 건물은 본채는 한국전쟁 중에 파괴되고 그 옆에 있던 탑만 남아 있다.
예원학교 옆 언덕길을 오르면 보이는 흰색의 높다란 건물이다.
이곳은 경복궁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일제를 견제하기 위해 고종이 피신을 했던,
이른바 1896년 ‘아관파천’의 현장이다. 외세의 문제를 또 다른 외세로 해결하려 했던
아둔함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주한 미대사관저인 ‘하비브 하우스’는 1884년 미국이 조선으로 부터 사들인 곳이다.
미국과 한국의 현대사......짧은 글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지금도 진행 중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4.19에서 5.16, 광주항쟁에 이르기까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정동교회는 1885년 한국에 온 미국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지은 교회다.
네모난 종탑과 붉은 벽돌의 본 건물이 간결하고 다부져 보인다.
이문세와 이수영이 부른 “광화문연가”란 노래 중에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란
대목을 들을 때면 이 교회가 떠오른다.

*글 작성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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