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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

지난 여행기 - 2000발리2

by 장돌뱅이. 2015. 2. 24.

4.교통법규 위반 처리
오늘은 왕복 여섯 시간 정도 차를 타야 하는 날이라 일찍 호텔을 나섰다. 호텔을 나선지 3분이나 되었을까?
큰길을 달리던 우리 차가 왼쪽의 갈래길로 접어들자마자 입구 쪽에서는 보이지 않던 경찰이 서있다가 차를 세운다.
어제도 지났던 길이라 무슨 일이냐고 운전수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진입금지 시간이란다.

자카르타에는 이렇게 시간대 별로 진입금지나 일방통행으로 변하는 도로가 더러 있다.
운전수 M은 알면서도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지름길이라 들어선 것이다.
창가로 다가선 경찰은 동일한 설명과 함께 운전사의 면허증을 요구했다.

20,000루피아(2,500원 정도) 짜리 스티커에 해당된다고 했다.
2만 루피아면 렌트회사에서 운전수에게 지급하는 이틀치 식대에 해당된다.
나는 운전수의 면허증을 가로막고 20,000루피아를 경찰 손에 건네 주었다.
경찰은 말투가 금새 친절한 어조로 바뀌고 경례까지 붙여 주며 우리를 보내 주었다.

교통 경찰과의 이런 경험, 이런 식의 정겨운 거래(?). 한국인에겐 많이 (해)본 익숙한 풍경 아닌가?
나 역시 그래서 숙달된 조교처럼 빠르게 상황을 정리(?)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상화된 부패.
이런 문제로 우리가 다른 나라를 꼬집기에는 낯 간지럽지만 인도네시아는 그런 것이 심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처음으로 인도네시아에 도착하여 입국 심사대 앞에서 줄을 서는 사람은 잠시 어리둥절하게 된다.
입국심사대를 바로 통과한 자리에 사람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치켜든 마중객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세관심사를 통과하기 전이다.
아마 공항관리자들에게 얼마씩을 집어주고 생긴 특혜일 것이다.
마중객들의 종이에는 대부분 한국 사람 이름이 많이 적혀 있는데 나는 이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관
검사 후의 정식 출구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것과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좀
더 일찍 손님이나 윗 사람을 만나면 더 공손하고 더 충성을 다하는 것이 되는 것일까?
원하기만 하면 입국심사대에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공항관리 아무나 붙잡고 급행료(?)를 지불하면 사무실에서 별도로 처리를 하여 주어 외교관 통로로 바로 나갈 수 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회사의 높으신 분들과 함께 출장 가는 사람이 윗사람을 위해 자주 애용하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터무니 없이 많은 돈을 내놓는 한국사람도 있다고 한다.

사회의 모든 문제 해결에 있어 우리가 지도자급이나 높으신 분들을 먼저 질타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설사 어깨를 낮추고 손을 비벼야 하는 아래 사람이 그런 제안을 하더라도 '그만두게. 좀 기다리지 뭐.'라고 한다면
얼마나 모두가 당당해지는 일이겠는가. 입국심사나 세관검사에서 약간의 지적이나 질문을 받으면 무조건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한국인의 습성도 버려야겠다. 상대 국가의 사회적 부조리를 일개 방문자가 바꿀 수는 없는 일이나
한국인은 시비만 걸면 쉽게 돈이 나온다는 그들의 그릇된 사고 방식은 바꿀 필요가 있겠다.

요즈음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90년대초 한국 기업들이 인도네시아로 대거 몰려 갈 적에 인니 경찰은 가끔씩 한 밤중에
자카르타 시내의 도로를 차단하고 기습적인 차량 불심 검문을 하곤 했었다. 이 때 증명서가 충분치 않은 외국인(특히 한국인)은
무조건 하차시켜 근처의 파출소로 연행한다는데 연행해서 어떻게 되는 건지 나는 아는 바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 그런 경험담을 말한 사람은 모두 2 -3불 정도의 돈을 주고 그냥 '무사 통과'를 하였으니까 .

당시 많은 한국 파견 근로자들이 회사 사정상 일단 관광 비자로 입국하여 근무하면서 사후에 취업 비자를 발급받는 형태를
취했는데, 이런 약점을 노려 금전을 갈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합법적인 비자를 갖고 있는 사람도 경찰이 차를 막으면
일단 돈부터 주어 버린다고 하였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골치 아퍼서' 또는 '몇 푼 되지도 않는데' 하는 것이다.

나도 딱 한번 말로만 듣던 그 검문에 걸린 적이 있다. 시내 중심가에서 술을 마시고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 때 나는 여권과 취업 허가서의 사본만을 지니고 있었다. 원본은 집에 보관하여 두고 다녔던 것이다. 사실대로 말했더니
차에서 내리라는 것이다. 혹시나 하여
회사의 명함도 보여줬는데 막무가내였다. 어떻게 되는가가 궁금하기도 해서 끝까지
가 볼 결심을 하고 차에서 내렸더니
경찰은 검문소(파출소?)같은 안으로 데리고 가서 안에 있던 나이가 든 경찰에게
인계를 하곤 나가 버렸다. 나는 화가 나기도 해서 그 나이 든 경관에게 따지고 들었다. 이것이 사본이지만
나의 주소와 근무지가 명확하니 확인이 필요하면 나의 집까지 동행하자고 하였다. 그는 사본은 인정할 수 없다면서
오른 손으로 책상 서랍을 계속 열었다 닫았다 하였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추측할 수 있었지만 나는 모르는 척
 언성을 높여
내가 지금 집에 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는 밤에 근무할 때는 힘들고
어쩌구 저쩌구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하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 서로 말없이
눈만 껌벅이는
어색한 시간이 잠시 흘렀다.


나는 수첩과 볼펜을 꺼내며 그와 나를 검문한 경찰의 이름을 알려 달라고 하였다. 마치 그들의 이름을 적어두었다가
내가 나중에 손을 보기라도 할 것처럼. 왜 우리나라에서 술취한 취객이 파출소 등지에서 주정을 하면서 무슨 대단한
'끝발'이라도 있는 양 자주 써먹는, 구닥다리 수법인, '니들 내 전화 한 통이면 다 죽는 수가 있어.' 하는 식 있지 않는가?
내 입으로 차마 그런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분위기 상으론 다분히 그런 의미를 던진 것이다.
그런데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는 별안간 저자세가 되어 나를 집에 보내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 날밤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권위적인 사회는 바로 그 권위에 허약한 모양이다.
씁쓸한 방법을 씁쓸하게 써먹었던 기억이다.


5. 뿐짝 PUNCAK
어디건 산이 없는 풍경은 한국인에게 낯설다. 한국인에게 해는 언제나 산에서 뜨고 산으로 진다.
어린 아이들의 그림에도 항상 산이 있고 그 산자락에 집이 있다.

자카르타처럼 산이 집이나 마을 뒤의 배경을 만들어주지 않는 곳에서 나의 시선은 뭔가 허전하고 안정감을 잃는다.
자카르타의 스카이라인을 만들고 있는 것은 도심 빌딩의 외곽선이거나 변두리 마을의 더벅머리 같은 야자수 뿐이다.
그러나 자카르타에서 남쪽 고속도로를 따라 2시간여를 달리면 보고르BOGOR라는 도시 뒤편으로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높은 산들을 보게 된다.

높이 1000M에서 3000M에 이르는 산들이다. 그 지형적인 영향 때문인지 보고르는 비가 많이 내려 '비의 도시'
(KOTA HUJAN)라고도 불린다.
. 보고르를 지나면 길은 이제까지의 직선을 버리고 가파른 산을 오르기 위해 곡선으로 변한다.
해발 3,000의 국립공원인 GEDE-PANGRANGO 산을 오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곳을 뿐짝PUNCAK이라고 부른다.
PUNCAK은 인니어로 정상, 꼭대기를 의미한다.

19세기초 이 곳에 해발 1,450M의 고개를 넘는 도로를 만들었다. 이 고개를 넘어 두시간쯤을 가면 1955년 비동맹회의로
유명한 역사 도시 반둥 BANDUNG 에 닿는다. 뿐짝에는 흔히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온다. 하나는 따만 사파리(TAMAN SAFARI)
라고 부르는 자연 동물원 때문이고 또 하나는 산자락을 따라 광활하게 펼쳐진 차밭(TEA PLANTATION)을 보기 위함이다.


우리는 동물원 앞 가게에서 동물에게 주려고 바나나를 샀다. 이곳은 자연동물원이라 동물들을 우리에 가두어두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 두었다. 사자나 호랑이들은 분리하여 별도의 울타리 안에 있지만 울타리 내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방문객은 자신의 차량으로 여러 짐승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가며 가까이서 동물들을 볼 수 있다.

방문객에 익숙해진 동물들은 차길을 막거나 차창 가에 다가와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챈다.
조카들과 딸아이는 그런 동물들에게 직접 바나나를 주며 매우 즐거워하였다.

자연동물원을 돌고 나오면 놀이공원이다. 여기서는 여러 가지 동물 쇼를 관람할 수 있고 길들인 맹수들과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과 코끼리와 낙타 등을 타며 동심으로 돌아가 보았다. 따만 사파리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언제나 서늘한 바람이 불어 좋았다. 때문에 오래 걸어다녀도 지치지 않았다.

따만 사파리를 나온 우리는 다시 차를 산 정상(PUNCAK PASS)으로 향하는 방향을 잡았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번갈아 방향을 바꾸며 오르는 길 옆으로는 작은 가게와 음식점이 줄지어 섰고 뒤편의 산등성이엔 돈많은 사람들의
호사스런 별장이 아름답다.
이 곳은 기후가 서늘하여 별장을 짓기에 알맞은 곳이다.

우리 가족은 예전 자카르타에 살 때 이 곳 아는 사람의 별장 하나를 빌려 며칠 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는데 잘 다듬어진 초록의 잔디와 아름다운 꽃밭 그리고 수영장까지 딸려있어 너무 좋았다.

잠깐 옛일을 회상하는 사이 우리를 태운 차는 어느새 드넓은 차밭 사이로 들어섰다.
산등성이를 타고 넘는 광활한 초록의 물결.. 우리나라 전남 보성의 차밭을 확대시켜 놓았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까.

초록이 어울리는 곳은 자연뿐이라고 한다. 아니 자연만이 완벽한 초록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창문을 열고 밀려들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에 심호흡을 하니 가슴 속까지 차밭의 싱싱한 초록이 가득 차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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