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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

지난 여행기 - 2000발리3

by 장돌뱅이. 2015. 2. 24.

6. 추억은 아름다운 꿈


아래 글은 딸아이가 인도네시아에 살 때에 쓴 일기의 일부분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번 여행의 후기와 관련이 있는 부분을 위주로 몇 개 뽑아보았다. 초등학교 일학년의 그림일기라 글은 매우 짧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시절동안 쓴 모든 일기를 보관하고 있다. 그 내용은 그대로 우리 가족의 지난 생활이어서
우리는 가끔씩 일기를 들추며 즐거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곤 한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과 인조인간의 구별은 추억에 있다고 했다.
기억이 메마른 것이라면 추억은 아련한 감정이 있는 것이다. 또한 추억은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돌이켜 볼 때마다 언제나 새롭게 살아 나오는 아름다운 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992년 7월6일 월요일
제목 : 신디와 함께
학교에서 돌아오니 옆집 신디가 왔다. 신디와 함께 인형 놀이도 했다. 참 재미있었다.

1992년 10월 11일 일요일
제목 : 수영
수영장에 가서 자유형과 평형을 했다. 가로로 건너갔다. 아버지가 잘한다고 칭찬하여 주셨다.
아버지가 다음에는 세로로 건너자고 하셨다

1992년 10월 25일 일요일
제목 : 생일잔치
마이클 오빠의 생일 잔치에 갔다. 먹을 것이 많고 맛있었다. 2학년 언니도 같이 갔었다.
쇼를 할 때 나는 노래도 부르고 3학년 아영이 언니와 놀기도 했다. 집에 올 때 떡을 조금 집에 가지고 왔다. 집
에 와서 떡을 다먹어 버렸다. 하루가 참 즐거웠다.

1992년 11월 18일 수요일
제목 :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처음에는 MERRY CHRIST MAS를 붙여 놓고 그 밑에 크리스
마스 장식을 했다.
스티커를 사다가 창문을 만들어 집을 그리고 그 밖에 눈이 오는 것도 그리고 색종이로 장식을 하기도 했다.
그거말고 또 다른 것을 사서 만들기도 했다.

1992년 11월 22일 일요일
제목 : 자동차 산 일
밤에 일기를 펴놓고 하루 중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공부한 것, 수영한 것, 장난감 자동차를
산 일이다. 수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아버지께서 다이아몬드 슈퍼마켓에 가자고 했다.
들어가보니 1층, 2층, 3층이 온통 크리스마스 노래,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되어 있었다. 나의 입에서는 '
우와' 이 소리 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동차를 사서 재미있게 놀았다.

1992년 12월 28일 월요일
제목 : 이삿날
이사를 하는 날이다. 우리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한다. 정이 든 집, 옆집 윈디,
신디, 따드린과 헤어지는 게 무척 싫었다. 그러나 혜연이네 와는 더 가까와져서 기뻤다. 그래서 요즈음 전보다 자주 만났다.
더욱 가까워지니 매일 만날 것 같았지만 아직도 조금 멀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사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1993년 1월 16일 토요일
제목 : 발리섬
우리 가족은 이번 겨울 방학 중, 다음 목요일쯤 발리섬에 놀러 갈 예정이다.
가는 날이 점점 다가오니 내일이면 가겠지, 내일이면 가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1993년 1월 21일 목요일
제목 : 발리
아침 일찍 발리를 가려고 공항에 갔다. 가서 음식점을 제일 먼저 갔다.
가서 보니 바다가재가 있어서 맛있게 먹고 또 다른 구경을 하러 갔다.


1993년 1월 23일 토요일

제목 : 바다
따나 롯에 갔다. 따나 롯에 가보니 바다가 있었다. 바다에는 멋있는 게 너무 많았다.
바닷가의 파도소리, 바다가의 게들, 너무 멋있었다.

1993년 1월 24일 일요일
제목 : 자카르타로 출발!
오후에 자카르타로 가려고 공항으로 갔다. 발리를 떠나기는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4일만에 본 우리 집이 최고였다.


7.누가 발리를 뭐라고 말하든 간에


WHATEVER OTHER TRAVELLERS TELL YOU ABOUT BALI BEING TOO TOURISTIC:
DON'T BELIEVE THEM!. IT'S A GREAT PLACE TO TRAVEL. OF COURSE YOU FIND TOURISTS IN A LOT OF PLACES,
BUT AS LONG AS YOU AVOID THE SOUTH, THIS IS BEARABLE.


비행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지면서 마지막 힘을 쓰는 굉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7년 만에 또 다시 발리에 온 것이다.
바다와 사원과 화산, 그리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끝끝내 지켜온 그들만의 고집스런 전통이 있는 섬.
우리가 머무를 예정인 호텔은 누사두아(NUSADUA) 해변의 힐튼이다. 누사두아는 철저한 계획 하에 개발된
관광 단지이다. 1983년에 첫 번째 호텔이 문을 연 이래 지금은 GRAND HYATT, HILTON, CLUB MED, SHERATON 등
이름있는 호텔들이 해변을 따라 늘어서 있다.

누사두아의 호텔은 고도제한규정 때문에 위압적을 높이 솟은 건물이 없이 모두 공원같은 숲속에 파묻혀 있다.
누사 두아의 반대쪽인 서쪽에 있는, 발리에서 가장 이름나고 오래된 꾸따 해변 주변은 푸켓의 빠똥 비치처럼 식당과
바와 여행사 환전소 등이 밀집되어 있고 행상인들로 거리가 번잡한데 비해 누사두아는 일체의 잡상인이
금지된 조용한 해변이다.

이런 식의 조용함은 현지인들의 모습과 체취를 느껴보려는 여행자에게는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귀찮게 달라붙는 행상과 정찰제가 아닌 물건 가격에 신경쓰이는 실랑이를 하며 부대껴보는 것도 여행을 하며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즐거움이니까.
그러나 어린 아이를 동반하고 하는 여행은 자꾸 보수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누사두아의 힐튼 호텔의 들머리는 이곳 비치의 대부분의 호텔이 그렇듯이 발리의 전통적인 장식물들로 장식되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들은 발리에 '발리적인' 것을 보러온다. 우리나라도 경주나 제주도등 이름난 여행지만이라도
'한국적인' 모습의 건물을 세웠으면 싶다.



우리 자신과 우리를 찾아오는 외국인들을 위하여 아무런 '한국적인' 멋도 분위기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특색없는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은 이제 그만 지었으면 한다. 무주 리조트에 있는, 유럽의 건물을 본 떠 지었다는 어느 호텔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길지는 몰라도 어쩐지 한정식집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내놓는 것 모냥 어울리지 않는다.

최근에 내가 사는 울산에는 옥상을 회교 사원처럼 둥근 돔으로 장식한 국적불명의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모두 러브호텔들이다. 밤에도 외곽선을 따라 네온사인을 장식하여 낯선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번은 외국 손님이
그 모습을 보고 울산에 회교도들이 이렇게 많이 있냐고 놀라움을 표시하여 대답하기가 궁색했던 적이 있다.

힐튼은 들어가는 입구의 화려함 외에도 아름다운 정원과 멀리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시원스럽고 거대한 로비가
또한 우리를 감탄하게 하였다.
바다쪽을 향해서면 인도양의 시원스런 바람이 온몸 가득 안겨왔다. 깔끔한 방과 종업원의
더없는 친절도 좋았다. 한가지 흠이라면 수영장의 수심이 어린 애들에게는 조금 깊은 듯하여 키가 작은 조카들은
물 속에서 서있지 못하고 항상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8.짐바란 해변의 석양과 해산물 까페
발리는 꼭지점이 밑으로 향한 역삼각형(▽) 모양으로 생겼다.
우리가 묵었던 누사두아 해변의 힐튼 호텔이 아래쪽 꼭지점 부근 오른쪽에 위치한다면 발리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꾸따(KUTA) 해변은 꼭지점 왼쪽에 위치한다.
짐바란(JIMBARAN) 해변은 그 꾸따 해변보다 더 아래쪽에서 서쪽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길게 누워있다.

짐바란 비치는 두가지 때문에 유명하다. 하나는 서쪽에 위치한 해변답게 황홀한 일몰이고 또 하나는 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해산물 바비큐 식당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짐바란을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LONELY PLANET에는 BALI HIGH LIGHTS 몇가지를 꼽으면서 이곳을 다음과 같이 여러 번 언급하고 있었다.

JIMBARAN(SOUTH BALI) : A WONDERFUL PLACE FOR SEAFOOD, SEABREEZES AND SUNSETS - ENJOYING
THE SUNSET AND SCENERY, WITH A COOL DRINK AND A FRESH FISH ON THE FIRE, IS A TRULY WONDERFUL WAY
TO SPEND AN EVENING.

하이야트에서 지치도록 수영을 즐긴 우리는 점심 식사후 힐튼으로 돌아와 저녁 때까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택시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짐바란 해변으로 향했다. 힐튼에서 짐바란 비치까지는 25분 정도 걸렸다.



우리가 해변에 도착했을 때는 적도의 뜨거운 태양이 하루를 마감하며 아직 남아있는 열기를 태우듯 서쪽 하늘을
막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해변으로 나가 노을이 사위어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푸켓을 다녀오신 스머프님의 글을 읽어보니 '아침바다는 꿈을 키우고 저녁 바다는 욕심을 지운다'다고 써 있던데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는데 게으른 나는 짐바란에서 헛된 욕심을 지우는 지혜의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고
그저 잠시 바다와 하늘과 노을만을 멍하니 바라보았을 뿐이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위해 들어간 PUDAK CAFE는 특별한 사전 정보가 있어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임의로 골라
들어간 식당이다. 굳이 선택의 기준을 말하자면 주변 식당보다 약간 사람이 많았다고나 할까? 옆 좌석의 뚱뚱한
서양 여자들은 자리에 앉아 메뉴판만 보고 주문을 하였지만 우리는 직접 해산물을 고르기로 했다.
우리는 게와 새우 그리고 바다가재를 골라 무게를 달고 구이를 해달라고 주문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이 곳 식당의 저울은 이미 사전에 조정되어 있어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한국에서 저울을 갖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믿고 기준으로 삼을 수 밖에 없다.
해산물을 고른 후 요리에 들어가기 전 종업원에게 가격을 깍아 달라고 하니 실랑이 끝에 10%를 깍아주었다.

영업직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가격을 흥정하는 일이 내겐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이다.
여행 중 만나게 되는 이런 문제에 대해 나는 '대범한 척' 행동하는 것, 혹은 '회피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터무니 없는 가격에 바가지를 쓸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 합당한 가격이라면 적은 금액을 가지고 시간을
오래 끌지 않으려 한다. 자칫 그런 지엽적인 문제가 즐거운 여행 분위기를 흐릴까봐서다.
내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여행 중 기념품을 잘 사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흥정에 자신이 없으니 피하는 것이다.
물론 먹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짐바란 비치에는 해변을 따라 동일한 식당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있다.
식당마다 해산물을 굽는 흰색의 연기가 지붕 위로 안개처럼 자욱하게 피어 오른다.

음식은 맛이 있었다. 특히 바닷가재 구이는 다른 곳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훌륭한 맛이었다.
힐튼 호텔 앞 바다와는 달리 짐바란의 바다는 알맞게 출렁거리며 우리의 들뜬 이야기와 웃음 소리를 적당히 가려 주었다.
바람 역시 부드럽게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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