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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

지난 여행기 - 2001발리1

by 장돌뱅이. 2017. 8. 5.

여행 시기 : 2001년 05월
                 역시 출장 뒤의 주말을 이용한 2박3일의 짧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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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발리, 여기서 쬐금만 더 머물다 가자
호텔로 들어가기 전 일부러 길을 에돌아 하드락 카페 앞 꾸따 해변에 차를 세웠다.
썰물때여서인지 바다는 해변에서 저 멀리 밀려난 채로 거친 파도의 흰 거품을 겹겹이 물고 있었다.
그러나 거무튀튀한 색깔의 해변은 여전했다.

눈부신 백사장, 투명한 초록의 바다. 그런 것을 기대하고 꾸따에 올 것은 못된다.
꾸따 해변은 화산재의 영향때문인지 모래가 검은 빛을 띠고 있다. 바다는 높은 파도를 거느린 채
늘 멀리 밀려나 있다. 서너 차례 발리를 왔지만 꾸따의 앞바다에 몸을 담가 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나는 꾸따에 인색했다. 그저 이곳은 지나가거나 해변 뒷거리의 음식점이나 카페의 기억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문득 나는 이번 3일을 온전히 꾸따에서만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호텔은 꾸따 해변의 남쪽에 있는 중급 호텔에 잡았다.
호텔 자체는 큰 불만이 없으나 훌륭하나 해변의 끝에 위치한 탓인지 해변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다.
죽은 산호 조각과 덩어리들이 몰려와 흩어져 있어 맨발로는 돌아다니기도 힘들다. 나는 가족과 함께
90년대 초반 이 호텔에 묵었었는데 아마 그때 받은 이곳 비치의 인상 때문에 그동안 꾸따 비치에 대하여
후한 점수를 주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짐을 풀고 수영장으로 나갔다. 수영장 옆의 정자에선 바닷바람을 받으며 몇몇의 서양인들이 맛사지를 받고 있다.
나도 받아볼까 망설이다가 그냥 수영으로 잠시 몸을 풀고 의자에 길게 누워 책을 읽었다.
야자수 잎사이로 파란 하늘이 씻은 듯 깨끗하다. 번잡했던 며칠 간 출장 업무의 기억도 그 사이 씻겨 나간 듯하다.
이제 잠시 그런 기억들은 접어두자. 가볍고 상쾌하다. 여행하는 자만이 맛 볼수 있는 기분이다.
혼자만이 하는 여행. 작년 가을 이곳 발리의 우붓을 다녀온 뒤로 처음이다.

"여행은 곧잘 사람의 허점을 드러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남과 여행하는 걸 싫어하고 그래서 남과 여행을 같이 가기도 한다."
유홍준 교수의 말이다, 나 역시 여럿이서 함께 다니는 축제 분위기의 여행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혼자만의 한적함을
즐길 수 있는 여행도 좋아한다.
깜빡 잠이 들었던가? 어느 덧 수평선 가까이로 내려 앉은 해가 햇살을 눈에 비추었다.
나는 타월을 반납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꾸따 비치로 나가 해변의 노을을 보기 위해서 였다.


KUTA IS STILL THE BEST BEACHES ON BALI AND
WATCHING
THE SPECTACULAR SUNSET IS ALMOST AN EVENING RITUAL.

THERE ARE KIOSKS SPACED ALL ALONG THE BEACH SERVING DRINKS AND SNACKS.
PRICES ARE PREDICTABLY HIGHER THAN YOU'D PAY ELSEWHERE,

BUT IT'S WORTH IT FOR SOME PEOPLE-WATCHING AND SEE BREEZES.
                                                       - LONELY PLANET BALI 중에서 -


그리고 론리 플래닛은 또 KUTA SEAVIEW RESTAURAT와 SARI YASA COFFEE SHOP 등을 바다와 황혼을 보기에
좋은 장소로 꼽았다.
그러나 거칠 것 없는 바다에 전망 좋은 장소가 어디 거기뿐이랴.
나는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나가 다리를 뻗고 앉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에 나와 있었다.
아직도 파도 위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몰려나와 사진을 찍거나
소리를 지르며 장난을 치기도 하며 하루 해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평선 가까이 떨어진 태양은 커질대로 커져
붉게 타올랐다. 구름도 온통 붉은 빛이었다. 바다 위에도 붉은 기름을 부은 듯 번질거렸다.
붉은 빛이 사위어 가자 이번엔 노란빛으로 변하였다. 그것은 자연만이 연출할 수 있는 신비롭고도 장엄한 변화였다.



내가 해변에 앉을 때부터 물건을 사라고 조르며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도 그 순간만은 자신의 본업을
잊은 듯
조용히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잔띡 스깔리(매우 아름답다)!"
문득 그는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인지 혼자 감탄하는 것인지 묻는 것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거대한 자연의 외경 앞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이 매우 작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게 된다.
나는 특정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는 것은 종교적인 신앙심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론리 플래닛이 꾸따의 황혼에 'RITUAL'이란 단어를 쓴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바다가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20.꾸따의 밤
저녁 식사를 마친 나는 꾸따의 뒷골목을 정해 놓은 곳 없이 걸어다녔다.
다리가 아프면 바나 카페에 들어가 잠시 쉬며 맥주를 마시고 다시 이 골목 저 골목을 들어가 보았다.
발리 해변의 최고 번화가인 꾸따의 뒷골목은 태국 푸켓의 빠똥과는 전혀 다르게 '미성년자 입장가'이다.

16세기말 유럽인들이 발리에 첫발을 내딛은 이래 꾸따는 1960년대 호주와 유럽을 오고가는 히피족 대열의
중간 기착지의 역할을 하면서 변모를 시작했다. 처음에 그들은 발리의 수도인 덴파사르에 머무르면서 당일치기로
해변을 다녀오는 형태를 취했으나 나중에 꾸따에 숙박시설이 생기면서 70년대들어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낭만적인 세대인 히피족들에 의해 개발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종교와 언어를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발리의 문화와 종교의 완강함 때문인지 발리에서 태국 해변의 노천바처럼 '원초적 본능'적이고 '말초적 퇴폐'적인
풍경은 보기 힘들다.

그러나 그렇다고 발리의 NIGHT LIFE가 수도승들의 선방같다는 뜻은 아니다. 택시 운전사들은 곧잘 '마우 노나 잔띡
?
(이쁜 여자를 원하냐?) 이라고 물었고 맛사지와 가라오케 나이트 클럽 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한 거리의 모퉁이에선
모자를 눌러 쓴 청바지 차림의 아저씨가 '유 원트 마리화나? 하며
끈질기게 따라 오기도 했다.

호텔로 돌아오니 로비 옆의 바에서 노래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막 노래를 마치 가수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꼬레아" 라고 대답했다.
"아하 꼬레아! 싸랑해!" 하며 곧바로 노래 "싸랑해"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맥주 한잔을 먹고 나자 약간의 취기와 함께 피곤함이 몰려왔다. 저녁 내내 걸은 탓이리라. 
아내가 생각났다. '이 자리에 함께 있으면 좋았을 텐데. 함께 다시 발리에 와야지!'
나는 "싸랑해" 를 흥얼거리며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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