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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행복한 영화 보기 16. - "웰컴투동막골"

by 장돌뱅이. 2005. 8. 20.

 


*사진 출처 : 웰컴투동막골 홈페이지


1950년대 선우휘의 소설 중에 「단독강화」란 단편소설이 있다.

내가 아는 한 소설 속에서 최초로 그려진 남북 병사의 평화로운 만남이다.
전쟁터에서 낙오되어 우연히 마주친 남북의 병사는 긴장의 순간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두 사람만의 강화(講和)를 맺는다. 하룻밤을 동굴에서 지내며 함께 평화와 안식을
갈구하던 둘은 그러나 끝내 죽음에 이르고 만다.

1997년 박상연이란 젊은 소설가는 장편소설 『DMZ』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의
남북 병사가 은밀한 만남을 가진다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소설은 나중에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로 만들어져 엄청난 관객을 동원했다. 그리고 그런 비슷한
만남이 실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 남북
병사들의 개인적인 우정은 우연한 계기로 삽시간에 파국에 이르며
역시 죽음으로 결말이 난다.

경계와 금기를 넘어선 댓가는 상상력의 세계 속에서도 죽음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만큼 분단현실의 구조는 냉엄한 것이었다.

2005년 여름, “웰컴투동막골”에서 남북의 병사는 다시 만난다.
그리고 역시 모두 죽는다. 영화의 주인공이 마지막 내뱉는 말처럼
“다른 곳(시기)에서 만났더라면 멋지게 살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직도 우리 시대는 죽음 이외의 방법으로 그들의 만남을 정리하지 못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웰컴투...”의 만남과 죽음이 앞의 두 경우와 조금은 다르다.
앞의 경우가 병사들만의 만남과 죽음이었다면 “웰컴투...”에선 남북 병사들 사이에
그리고 만남과 죽음 사이에 동막골과 동막골의 주민이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본대에서 이탈한 남한과 북한의 병사들이
동막골이란 깊은 산속 오지의 마을로 오게 된다. 동막골은 이념도 전쟁도 모르는
천진난만형 ‘무공해’마을이다. 주민들은 총과 수류탄을 알아보지 못하며 남과 북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떼로 몰려와 밭농사를 망치는
멧돼지 문제일 뿐이다. 그들은 비행기 사고로 추락한 미군 병사까지 돌보고 있어
상황은 복잡해진다. 팽팽한 대립과 반목 끝에 남과 북의 병사들은 마침내 손을 잡고
미군의 폭격에 맞서 동막골을 구하고 모두 전사한다. 그들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평화로운 마을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손을 잡은 것이다.

요약을 해놓고 보니 다소 상투적인 줄거리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대목대목 이어지는
웃음 속에 자연스럽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FANTASY라고 한다면 현실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분명 “웰컴투...”는 판타지이다.
눈밭에 나비가 날고 수류탄 폭발에 옥수수가 팝콘이 되는 화면 기법이 그렇고
그보다 이상향의 평화로운 마을 동막골 자체와 영화 속이나마 (지난 반세기 동안은
상상조차도 힘들었던) 평화를 지키기 위한 남북공조의 실현이 그렇다.

백여 년 전 인간이 꿈꾸었던 하늘을 난다는 판타지는 이제 누구에게도 특별한 일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꿈은 이루어진다던 지난 월드컵의 응원 문구를 우리는 감동으로 기억한다.
아직은 판타지이지만 상상의 공간 속에서 만난 동막골의 이야기는 우리의 정서 속으로
그리 무리없이 스며 들어온다. 그만큼 현실이 바뀌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얼마 뒤 다시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남북 젊은이들이 만난다면 혹 그들의 만남은
비장한 죽음이 아닌 해피엔드로 끝날 것이라는 기대를 걸어도 될지 모르겠다.
단 한번만 그렇게 된다면 그들의 만남은 이제 더 이상 우리를 불러 모을 특별한 소재가
아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비 내리는 날씨를 무릅쓰고 간 영화관에서 웃으며 나올 수 있었던 해맑은 동화같은 영화.

렛쓰고우투동막골!!!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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