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출장단상 - 세상에서 가장 큰 신발이 필요한 나라.

by 장돌뱅이. 2005. 7. 6.

     미국은 인구밀도가 낮은 대지적 특성 때문에 공공교통수단을 기준으로 해서    
     말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후진국가 중의 하나로 꼽힌다. 미국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선진이 아니다. 그들은 일본의 신칸센(新幹線)을 미래학적 교통수단    
     (FUTURISTIC TRANSPORTATION)이라고 선망하고 있다.    
     신칸센을 설치할 재력과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회의 도구연관 속에서는   
     그러한 존재가 의미가 없고 따라서 재정적으로 유지가 되질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보스톤은 자가용 없이도 생활할 수 있는 희유의 도시 중의 하나라고   
     꼽히지만 대부분의 도시에서(로스엔젤레스가 가장 후진적인 경우에 속함)는 자동차가    
     없이 문밖 출입을 할 수 없다. 구멍가게를 가는 것도 이발소 가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    
     그럼 그러한 사람에게 있어서의 자동차는 우리가 외출할 때 신는 신발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농촌에는 돈이 없으니 자동차가 없을 것이 아닌가? 천만에! 미국의
     농가에서는 식구 일인당 한 대 꼴의 자동차가 필요하다. 한 식구마다 자기 자동차가
     없이는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이런 현상은 교외에 사는 사람의 경우 보통 있는 일이다.    
     그럼 그것이 잘사는 것이라고 부러워 보여야만 하겠는가?
     그것이 오히려 불편한 것이라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는가?
     매 식구마다 자동차를 하나씩 가져야 기동력이 생기는 그 사회를 우리는 이상사회로   
     쳐다봐야만 하겠는가? 신발치고는 너무도 거추장스러운 쇠뭉치를 우리 발에 달고
     다녀야만 하겠는가? 70 - 80 노인네들이 직접 자동차를 몰면서 고속도로에서 벌벌 떨며
     핸들을  잡고 있는 모습이 부럽게만 보이는가?  가련하게 보여야만 마땅하지 않는가?                              
                                             - 김용옥,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중에서- 


이번 출장길에는 호텔에 묵지 않고 직원 숙소에 짐을 풀었다.
아직 한국에서 가족들이 합류하지 않아 ‘미국홀애비’로 지내는 직원의 아파트에서 십여 일을
보낸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일을 마치고 아파트로 들어가는 순간마다 나는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어떤 섬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구멍가게 옆에 세탁소, 그 옆에 제과점, 그 옆에 비디오가게, 그 옆에 오락실,
그 옆에 약국, 그 옆에 이발소, 그 옆에 통닭집, 그 옆에...또 그 옆에......
샌디에고의 주거지역은 내가 사는 한국의 아파트 앞 골목길의 그런 풍경과는 대조적이었다.
시원스런 도로와 깔끔한 화단과 어린 아이에게도 세심하게 배려한 아름다운 공원이
있었지만 해가 지고나면 길거리는 가로등과 지나가는 차량의 헤드라이트만 마주칠 뿐
두런거리며 걸어다니는 사람의 그림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도시의 기본 구조가 차량 이동을 전제로 되어 있었다.
주택지에는 주거공간과 작은 공원부지만 있을 뿐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었다.
음료수 한 캔을 사기 위해서도 우리는 차고에서 차를 꺼내 큰길을 달려야 했다.
게다가 위의 인용 글에도 언급된 것처럼 샌디에고 역시 대중교통의 사각지대였다.
붉은 색의 앙증맞은 전차가 있었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루트를 순환하는 버스도
있긴 하였지만 보통의 생활을 거기에 맞출 수는 없어 보였다.

HOTEL에 묵었을 때도 차를 빌리지 않으면 호텔 밖의 가게나 식당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곳에도 사람의 두 다리만으로 무엇인가를 찾고 느낄 수 있게 되어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친구 녀석들의 놀림대로 내가 촌놈 체질과 후진국적 사고의 결합체여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문득 문득 내 나라의 사람 냄새나는 거리가 그립기도 했다.


*위 사진 : '세상에서 가장 큰 신발'을 위한 도로.

(2002년9월)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리기  (0) 2005.08.14
출장단상 - 스미마셍  (0) 2005.07.06
출장단상 - 빨래널기.  (0) 2005.07.06
출장단상 - 그들의 성조기.  (0) 2005.07.06
겨우 존재하는 것들  (2) 2005.05.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