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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출장단상 - 스미마셍

by 장돌뱅이. 2005. 7. 6.


외국을 다니다 보면 더러 외면하고픈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방콕에서 싱가포르 가는 타이항공을 탔다가 이른바
‘어글리 코리안’의 한 전형을 보았다. 자리를 잡고 책을 보며 이륙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기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 무리의 한국인 단체관광객이 탑승을 하고 있었다. 아직 훤한 대낮이었음에도 술 좀 걸친 듯 얼굴이 불콰해져 있었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맨 뒤쪽에서 걸어 들어오며 유난히 시끄러운 사람의 손에는 먹다 남은 시바스리갈이 들려 있었다. 내가 앉은 옆과 그 뒤쪽 좌석을 차지한 그들은 작은 유리병에 담아온 멸치볶음을 안주 삼아 다시 술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이륙을 하니 테이블을 접고 좌석에 앉아 달라는 승무원의 요청을 무시하고 한동안 소란을 피우던 그들은 이륙 후에도 통로를 막고 커다란 소리로 떠들고 웃으며 술을 마셨다. 한 시간쯤 뒤 기내 면세품을 팔 때였다. 한 사내가 손가락으로 담배를 가리키며 태국 여승무원에게 물었다.
“타올라이 캅?”
'값이 얼마냐’는 태국말이다. 여행하면서 배웠거나 여행 준비를 하면서 알아둔 말이리라.
태국말로 물어서인지 승무원은 태국말로 답을 했다.
“씹하 유에스 달라.”
‘씹하’는 15를 뜻한다.
그러자 그 사내는 큰 소리로 되받았다.
“뭐라꼬? 씹? 우와! 이 가스나가 씹이라네.”
터지는 동행의 웃음소리.
사내는 일부러 그 단어가 나오게 말을 유도한 것 같았다.
다소 어리둥절해하는 여승무원 앞에서 사내는 굉장한 것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그 말을 반복하였고 동행들은 더욱 큰 소리로 짓궂은 농담을 덧붙이며 웃어댔다.

무엇이라고 한 마디쯤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옆 좌석에 앉아있던 서양인이 내게 물었다.
“Where are they from?”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대답했다.
“From  Japan, maybe···

미국 출장 중 한국 교민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들렸다가 미주판 중앙일보를 보게 되었다.
L.A 인근 해변에서 어린이를 동반한 한인 서너 가족이 불법으로 고둥을 따다가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 4만 불의 벌금 딱지를 떼었다는 기사가 일면에 실려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이들 한인들은 처음에는 재미로 잡는 것이므로 다 놓아줄 것이라고 우겼다는데 차량 수색 결과 서너 개의 쿨러 통에 고둥을 가득 잡아 놓은 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법규에는 일인당 서른다섯 개까지만 채취가 허용되고 그 이상 잡으면 개당 1불의 벌금이 부여된다고 하니 벌금 4만불의 의미는······ 

도대체 그 많은 고둥을 무엇에 쓰려고 했던 것일까?
어릴 적 한국에서 보낸 추억을 더듬어 삶아 먹으려고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규정만큼의 양만 잡았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또 누군가 내게 그들의 국적을 물었다면 또 이렇게 큰 소리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They must be Japa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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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애국(?)하기 힘들다.

"스미마셍 일본!"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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