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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그것이 알고 싶다

by 장돌뱅이. 2005. 11. 3.

딸아이와 인사동에 나갔다가
지난 시대의 잡화를 모아놓은 한 가게에서
1970년에 발행된 초등학교 5학년용 교과서 “바른 생활”을 보게 되었다.

한국전쟁시 공산당의 잔학상과 북한주민들의 고통스런 삶,
기지를 발휘하여 무장공비를 신고한 시골 아줌마와 아저씨,
‘베트남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주기 위해 용감히 싸우고 있는’
국군 용사의 이야기가 “바른 생활”의 주된 내용이었다.

바로 그 ‘천인공노할 북괴의 만행’과 ‘용감하고 희생정신이 가득한 국군의
이야기’ 때문에 교과서 “바른 생활”은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던
초등학교 시절의 내가 학기마다 새 교과서를 받아오면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버리는 유일한 책이 되었다.

그 교과서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번 바뀐 걸로 아는데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그 시절의 '바른 생활'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아직도 북한은 잘 될 수도 없고
잘 되어서는 안되는 나라인 것 같다.
통일의 절차와 방식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 통일의 대상은 북한이 될 수 밖에 없음에도
북에 대한 호의적인 시각은 '친일보다 더 나쁘다'고 한다.

강정구 교수의 논문의 놓고 한동안 나라가 시끄러웠다.
정체성이 무너진 위기의 나라를 구하자고 연일 핏대를 세우던
일부언론과 정치인들은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끝나자 약속이나 한듯이
입을 다물고 있다.
그 사이 나라가 구해진 걸까?

논문 내용의 옳고 그름이나
찬성과 반대를 떠나
수사는 하되 구속은 하지 말라는 것이
나라가 망할 정도의 일 일까?

사무실 근처에 모택동의 사진이 걸려있고
그에게서 이름도 따온 듯한 음식점이 있다.
호사스럽게 생긴 탓에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의문이 들곤 한다.

교수의 논문을 단죄하는 기준이 되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무시무시한 법에서 음식점은 괜찮은 것일까?
또 거기에 드나드는 손님들은
안심하고 식사를 해도 되는 것일까?

만약에 중국공산당의 거두인 모택동의 사진이 아니라
예를 들어 북한의 누구같은 다른 사진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래도 음식점이니 괜찮은 것일까?

괜찮지 않다면 그 중국과 북한의 차이는 무엇일까?
중국도 엄연히 한국전쟁시 우리의 적이었지 않았는가?

만약 괜찮다면 음식점과 학자의 논문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세상일에
이렇게 알고 있는 것이 없으니
아무래도 나는 어린 시절 '바른생활'마저도
너무 건성으로 읽었나보다.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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