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과 함께 유난히 부산을 떠는 것은 우리 부부만이 아닌 모양이다.
평소 운동이나 산행에 별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들도 텔레비전에 단풍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는 들썩거리는 몸을 주체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극적으로 바뀌어가는
계절의 모습이 사람의 마음마저도 역동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조바심을 치며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아내와 나였지만
올 가을에는 주위의 부추김까지 더해지면서 지난 몇 주간 집중적으로
단풍을 따라 몇 곳의 산을 오르거나 걸어보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특별하게 단풍을 쫓아갔다기보다는 산에 오르니 그곳에 숲이 있었고
그 숲에 단풍이 있었다는 표현이 맞다. 억새가 특정한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을의
정취라면 단풍은 우리 국토의 모든 산들이 지닌 보편적인 가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느 해보다 바쁘게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아내와 같이 다시 공감하게 되는 말.
“정말 아름다운 우리의 국토!”
<치악산>
단풍하면 내장산이, 내장산 하면 단풍이 자연스레 연상되지만 아내와 나는 아직도
내장산 단풍을 보지 못했다. 내장산 자락에 가보긴 했지만 한번은 여름철이라 단풍
과는 무관했고 또 한번은 단풍철이었지만 고속도로를 벗어나면서부터 막힌 차량 행렬에
몇 시간을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돌아서 나오고 말았다.
그때부터 아내와 나는 절정의 시기에 널리 알려진 곳은 피하자는 생각을 했다.
여름철이면 바닷가를 피했고 휴가철이면 물과 바위가 좋은 유명 계곡을 피했다.
대신에 조금 덜 알려지고 조금 덜 아름다울지 몰라도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작은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어 했다.
울산에 살 적에 가을이면 경주의 보문단지에서 왕산마을을 지나 무장사터에 이르는,
느린 걸음으로 왕복 두 시간 정도 산책길을 아내와 나는 좋아했다.
4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가기 힘든 비포장의 도로였다. 게다가 무장사터는 삼층석탑을
비롯한 몇 점의 석제 유물이 흩어져 있을 뿐 지키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없는 폐사지
인지라 보문단지는 사람들로 넘쳐도 그곳에 이르는 길은 늘 텅 비어 있었다.
해마다 그 길을 걷다보니 나중엔 산모퉁이를 돌기 전 앞에 있는 몇 그루의 붉은 단풍
나무까지 미리 기억할 수 있었고 늘 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는 나무와 바위를 확인하며 반가워하곤 했다.
그 시절 아내와 내게 가장 완벽한 가을은 무장사터를 왕복하는 두 시간에 있었다.
치악산은 웅장하고 험한 산세로 흔히 ‘치가 떨리고 악에 받쳐’ 오른다고 한다.
아마 사다리병창이라 부르는 능선길을 통해 정상으로 오르는 경로에 붙여진
‘악명’일 것이다. 아내와 함께 그 치악산에 다녀왔다.
물론 이를 악물고 올라야 하는 정상을 다녀온 것은 아니다.
구룡사에서 세렴폭포에 이르는 편평한 길을 따라 왕복 두 시간 정도의 산책 나들이를
한 것이다.
원래 치악산은 가을 단풍이 유명하여 적악산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구룡사에서 구룡소를 지나 이어지는 계곡에는 붉고 노란 단풍이 적악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곱게 물들어 있었다. 앞으로 가을이면 치악산은 아내와 내게 경주의 무장사터를
잇는 산책길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치악산의 단풍을 즐기려는 수많은 인파와 휴일이면 사시사철 밀리는 영동고속도로의
교통체증이 거추장스럽겠지만 고민한다고 풀릴 문제도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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