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와 한 산행 기억 1.
일요일 아침 회사 직원과 울산 근교에 있는 신불산으로 등산을 가기로 하여 짐을
꾸리는데 느닷없이 딸아이가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신불산은 높이가 1200미터나 되어 아직 유치원에도 못 들어간 4살짜리 딸아이로서는
오를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딸아이는 막무가내였다.
힘들고 험한 산이라 땀도 나고 숨도 많이 찰 뿐더러 다녀온 뒤에 몸살이 난다고
얼러보기도 했지만 딸아이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다리 아프다고 하면
절대 안된다는 다짐을 받고 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한 후에 길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딸아이는 소풍이라도 가는 양 즐거워했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잘 데리고 나왔나 하는 생각이 들며 나도 덩달아 유쾌해졌다.
기왕에 나온 것 천천히 걸어서라도 정상까지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철모르는 딸아이에게 다리 아프다고 하면 절대 안된다는 약속을 수 차례 상기시켜 주었다.
그럴 때마다 딸아이는 문제없다며 자신이 얼마나 달리기를 잘 하는지 자랑을 하곤 했다.
본격적인 등산로에 채 들어서기도 전에 그런 다짐과 약속,
그리고 딸아이의 달리기 실력은 허망한 것이 되고 말았지만.
버스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지 채 십여 분이 지나지 않아 딸아이의 눈에 띄게 조용해져갔다.
재잘대던 수다도 없어지고 말을 시키면 대꾸도 단답형으로 바뀌어갔다.
나는 불안한 예감으로 딸아이의 뒤를 따르며 딸아이의 동태를 살폈다.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딸아이가 돌아섰다. 콧잔등에 땀방울이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자기로서는 오랜 고민 끝에 얻었음직한 ‘지혜로운’ 한마디를 던졌다.
“아빠. 다리는 안 아픈데 이상하게 졸립다.”
어차피 끝까지 걸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올 것이 너무 빨리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딸아이의 말에 킥 웃음이 나왔다. 어쨌거나 다리 아프다고 안하기로 한
약속은 지킨 것이다.
“졸립기만 하지 다리는 안 아프다니깐.”
“알았는데 좀 참고 걸을 수 없겠니?”
그러나 딸아이는 한 발짝도 더 나가지 않았다. 나는 같이 산행을 하는 동료에게
미안하여 배낭을 가슴 쪽으로 돌려 메고 딸아이를 들쳐 업은 채로 산행을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날따라 전문사진가도 아니면서 온갖 사진 촬영 장비를 가지고
온 동료 역시 내게 도움을 줄만한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위 사진은 그 날 정상 못 미친 그늘에서 점심식사를 하기 전 찍은 것이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반대편의 나의 모습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으나
딸아이는 정말 다리가 하나도 안 아픈 표정이다.
물론 이때는 졸음도 깨끗이 가신 듯 하다.
그 날의 기억이 아주 가까이 있는 듯 생생한데
딸아이가 벌써 대학 3학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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