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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발밤발밤16 - 경북 청도

by 장돌뱅이. 2016. 8. 9.


청도도, 청도가 고향인 친구도 오랜간만이다.
자상하게? 역마다 서는 무궁화호를 타고도 4시간만 달리면 가능한 일이었는데. 
 




청도역을 나오면 추어탕(鰍魚湯) 식당이 줄지어 있는 이른바 "추어탕 거리"가 있다.
맛은 대동소이하다지만 오래 전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들렸던 의성식당으로 갔다.
규모가 좀 커졌지만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고마웠다.
맛도 기억 속의 맛 그대로였다.

추어탕은 조리 방법에 따라 서울식과 남도식이 다르다.
또 남도식은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뉜다.
서울식은 미꾸라지를 살만 으깨어 넣고 남도식은 미꾸라지를 뼈째 갈아넣는다고 한다.
전라도식엔 들깨가루가 들어가 걸쭉하지만 경상도식은 맑은 국에 가까워 덜 걸쭉하다.
의성식당은 말할 것도 없이 경상도식 추어탕을 낸다.
된장과 얼갈이배추가 어우러진 구수하고 칼칼하고 개운한 맛이다.


 찌그러진 주전자 허리에 차고
 미꾸라지를 캔다 벼 벤 밑동을 파면
 거기 요동치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아찔함을 건져 주전자에 담는다

 확에 갈아 체에 받치기 전 요것들을

 고무 함지에 쏟아 놓고 소금 뿌려 썩썩 문지를 때

 죽을둥살둥 손에 감기던 차진 살맛이

 목구멍으로 꼴깍 넘어간다 땀에 번들거리며

 고닥새 해 넘어갈 틴디 집에는 언제 가냐고

 고시랑고시랑 따라붙던 가시내의 손목도

 주전자 속 미꾸라지같이 미끄러워서

 차진 살맛이 손끝에 아찔아찔 물린다

 억새밭 빠져나온 냇내가 저녁놀처럼 깔린다
                     -이병초의 시, 「미꾸라지」-

추어탕의 여운을 입에 담고 한결 느긋해진 기분이 되어 청도의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청도(淸道)는 이름대로 '맑은 길'의 고장이다.
산과 들이 그렇고 물이 또한 그렇다. 
평화로우면서도 시원한 풍경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청도는 예부터 감으로 유명하다.
씨없는 청도감은 "청도반시(淸道盤枾)"라 하여 임금에게 올리던 진상품이었다.
청도 도처에서 감나무 밭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청도여행은 감이 노랗게 익는 서정적인 가을이 제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한 여름의 청도행에선 감나무 밭만큼이나 많은 복숭아 밭을 볼 수 있었다.
꽃도 열매도 요염한 빛을 띄는 복숭아가 눈만 아니라 입맛도 강하게 유혹했다.  




둘레가 600여m, 넓이2만여 평의 유등연지()에는 연꽃이 한창이었다.




청도의 소싸움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린다고 한다.
열린구장이었던 예전과는 달리 돔 형태로 지어진 구장이었다.
경마장의 마권처럼 소싸움경기장에선 우권(牛卷)을 사서 흥미를 더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물론 청도가 고향인 친구도 뭘 어떻게 하는지 몰라 그냥 한 게임만 보고 나오기로 했다.
우리가 본 경기는 1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승부가 났다.





 2007년부터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 청도읍성.




조선 숙종 때 만들어진 얼음창고(石氷庫).
남한에 있는 여섯개의 석빙고는 모두 18세기 이후에 세워진 것이므로
청도 석빙고가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 석빙고를 짓는데 석달 동안 5천명 이상의 인원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들과 이 창고 속의 얼음을 먹을 수 있었던 사람들의 관계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지방 교육 기관인 향교.



주마간산으로 청도를 둘러보고 친구의 집으로 갔다.
'씨원이' (C1)이와 청도 한우를 먹는 저녁이 시원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산행을 했다.
남산이었다.
휴가철이라 해가 뜨면 계곡으로 차들이 몰려 복잡해진다고 해서 일찍 길을 나섰다.
안개가 걷히는 새벽길.
맑은 물 소리가 청청해서 좋았지만 새벽 모기 또한 극성이었다.
팔과 다리에 무차별 공습을 받았다.  








청도는 감과 복숭아 외에 대추밭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가을에 짙은 고동색으로 대추가 익으면 그또한 색다른 아름다움이 되겠다.




감나무 밭 속에 '생뚱맞게' 석탑 두 기가 서 있다.
원래는 석탑이 감나무보다 먼저였을 지도 모르겠다.
절의 생몰 내력은 알려진 바 없다. 탑의 형태를 보고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으리라 추정할 뿐이다.
세월은 석탑과 감나무의 '쌩뚱한' 만남을 자연스런 이웃으로 만들어 놓았다.

오래 전 아내와 초등학생인 딸아이와 이곳에 온 적이 있다.
가을이 깊어 주황색의 감이 지천이었다. 사람들이 감을 따고 있었다.
우리는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감을 팔 수 있는가 물었다.
"얼마나 사시게요?"
"그냥 우리 가족이 먹으려고요."
그러자 부부는 우리에게 커다란 봉투를 하나 내어주며 필요한만큼 따가란다.
남의 농사를 거저로 가져갈 수 있냐며 값을 치르겠다고 했지만 부부는 한사코 거절했다.
"얼마나 한다고요. 그냥 가져다 드세요."
나는 그때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건네주며 감나무 그늘에서
서울행 기차 시간이 다 되도록 해찰을 부렸다.
무덤덤하고 무심해지는 곳.
평온하고 여유로워지는 곳.
탑 사이의 마당에 햇살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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