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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발밤발밤17 - 서울 둘레길 1코스

by 장돌뱅이. 2016. 8. 28.






고은의 시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누님께서 더욱 아름다웠기 때문에 가을이 왔습니다

                                              - 「사치 부분 -

가을이 와서 누님이 더 아름다워진 것도 아니고
누님처럼 아름다운 가을이 온 것도 아니고
뭐야? 누님이 더욱 아름다워서 가을이 왔다고?
가을이 가까워지면 떠오르는 시인의 난해하면서도 절묘한 표현이다.

올해 실제의 가을은 시만큼이나 난해한 황당함으로 왔다.
이제까지는 수그러들 것 같지 않은 무더위가 어딘가 느슨해면서
끈적하던 습기도 살짝 말라가고 
아침 저녁으로 창문을 열고 닫을 때 피부에 와닿는 공기가 
어제와 미세한 차이가 있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올 더위도 끝났군' 하며 가을을 예감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기록적인 찜통의 더위가 8월 하순에도 전혀 물러서 기세가 아니었다.
어떤 예감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절정의 열대야가 정복자처럼 오래 군림을 하더니

하룻밤 사이에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하룻밤 사이에 느닷없이 가을이 와버린 것이다.





불쑥 높아진 하늘과 비늘 문양의 구름에서도 가을이 확연한 아침.
아내와 서울둘레길 1코스를 걸었다.
칙칙하게 몸에 감기던 공기도 어느 새 뽀송뽀송하고 투명해서 걷기에 마냥 좋은 날씨였다.
 



서울시에서 발행한 서울둘레길 안내도를 보면 1코스는 총14.3km로 2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아내와는 첫 구간인 7.2km까지만 함께 걸었다.
분기점인 당고개역에서 냉면 한 그릇을 먹고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내친 김에 혼자서
나머지 둘째 구간까지 걸었다.



1코스의 마지막은 공릉산백세문을 거쳐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에서 끝났다.
총 8코스 21구간 (한양도성길외)으로 나누어진 서울둘레길의 시작.
157km의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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