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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베트남

2016 말레이시아 KL과 베트남 HUE2

by 장돌뱅이. 2016. 9. 30.

나의 말레이시아에 대한 기억은 축구로부터 시작된다.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던 메르데카컵 축구대회
- 그것은 육칠십 년대 태국에서 열리던 킹스컵대회와 더불어 최고의 축구대회였다.

늦은 밤 라디오를 통해 귀를 세우고 듣던 중계방송은 언제나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뒤따르던 "여기는 상하(常夏)의 나라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태국의 수도 방콕)·····"
- '상하'란 말은 들을 때마다 어려웠다. 처음엔 혼자서 '상어'나 코끼리의 '상아'로 해석했었다.
열대지방이니 상어나 코끼리가 많아서 그렇겠거니 나름 짐작하면서.

역시 단골 멘트 중에 하나인- '가슴에 태극 마크도 선명한 대한의 건아들'엔
이회택, 박이천, 김호, 김정남, 정강지, 정규풍, 이차만 이세연 등등이 있었다.
우리나라 선수의 '강 슈우-웃'은 늘 '아깝습니다'고  상대방의 슛은 무조건 '어림없는 뽈'로중계를 하던
당시의 어떤 아나운서는 국내 전국체전에서도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으로 중계를 시작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모르겠다.

말레이시아의 축구가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것은 뮌헨올림픽 예선전 경기 때문이었다.
서울 시내 육교에 "뮌헨은 부른다 한국의 축구를!"이라는 글귀의 현수막이 걸려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한국 축구의 참사 중의 하나로 거론되는 그 경기는 1971년 가을 서울 운동장에서 열렸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한국은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일방적인 경기를 운영하며 수십 개의 슛을 날렸지만
말레이시아의 단 한번의 헤딩슛을 막지 못해 1:0으로 패하고 말았다. 운좋게 동네 형 덕분에 직접 경기장에
갈수 있었던 행운은 악몽으로 변했고 관중들은 퇴장하는 선수들에게 몰려가 분노의 아우성을 쳤다.

한동안 한국 축구를 괴롭히던  수중전이나 말레이시아에 약한  징크스가 그 경기로 생겨나게 되었다.
덕분에 기억에 남는 말레이시아의 축구선수들이 꽤 된다. 그날 골을 넣은 아마드, 나중에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은 소친온, 수비수 찬드란, 몇년 뒤의 골게터 목타르 다하리, 골키퍼 아르무감 등등

 

KLIA (KUALA LUMPUR INTERNATIONAL AIPORT)에서 탄 택시 운전사는 옛 축구선수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선수들이 예전만 못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말레이시아 축구는 승부 조작에 휘말리면서
급격하게 쇠퇴하였다고 한다. 


여행자에게 "KL(쿠알라룸푸르)는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의 중심지였던
메르데카 광장 주변은 역사적 스폿이 집중돼 있어 볼거리가 가득하다. 부낏 빈땅(BUKIT BINTANG) 지역은
젋은이들로 활기 넘치는 KL의 현재를 느낄 수 있다. 또 페르로나스 타워 주변으로 발길을 돌리면
쿠알라룸푸르의 눈부시게 빛나는 미래를 볼 것이다."(『말레이시아 100배 즐기기』 중에서)


우리도 위 여행 안내서에서 말하는 세 곳 안에서 맴돌았다.
숙소는 부낏 빈땅에 잡았다. 나머지 두 지역이 너무 멀지 않으므로 주로 도보로 이동했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전철이나 무료 버스인 "GO KL' 을 탔다. 
여행은 스치는 모든 풍경이 목적지이므로 구태여 택시를 타고 바쁘게 서둘 필요가 없었다.


이하 두서 없이 돌아다닌 4일의 기록이다.






↓아래 사진은 KL 대표 쇼핑몰 중의 하나인 파빌리온 PAVILION이다.
눈에 익은 상표와 구조의 대형 백화점이다.
나는 아내의 우측 일보 뒤에서 경호원?이나 짐꾼으로 따라 다녔다.
아내가 이 글을 보면 경호원은 몰라도 짐꾼이 필요할 만큼 물건을 많이 사지 않았으므로
억울해 할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쇼핑은 구경이 90%이다.나머지 10%는 작은 기념품류를 구입하는데 할애한다.
최근 들어 손자녀석의 옷가지와 장난감을 사는 것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근데 90%의 시간을 낭비하는 이 '비효율적인' 시간을 아내는 왜 즐거워하는지 나는 늘 궁시렁거리며 뒤따를 뿐이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이래서 남자들은 출구만 보고 걸어가는 '터널형(形)'으로 부를 수밖에 없다고 꼬집는다.




머스짓 자멕 MASJID JAMEK 은 이슬람사원으로 인도양식의 대표 건물이라고 한다.
말레이시아는 다민족 다문화국가이지만 인종으로는 원주민인 말레이인,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인이 가장 많다.




메르데카(MERDEKA)는 말레이-인도네시아어로 독립을 뜻한다.

메르데카 광장(DATARAN MERDEKA)은  1957년 8월31일 말레이시아의 독립이 선포된 곳이다.
이번 여행시기가 9월 초가 되다보니 독립기념일을 치른 흔적으로 곳곳에 말레이시아의 국기가 걸려있었다.
광장 주변에는 식민지시대의 이국적인 모습의 건물들이 많다.

개별적인 건물의 내력과 특징 보다는 메르데카광장을 한바퀴 돌며 외관구경으로 만족했다.


국립역사박물관(MUZIUM  SEJARAH NASIONAL)






KL CITY GALLERY






↓1897년에 지어졌다는 SULTAN ABDUL SAMAD BUILDING.
페트로나스빌딩이 세워지기 전에는 말레이시아를 상징하는 건물처럼 TV에 자주 등장하던 옛 행정부 건물이다. 




↓초록의 잔디로 덮힌 메르데카광장과 높다란 국기 게양대




↓옛 KL RAILWAY STATION.으로 1910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NATIONAL MOSQUE.
이슬람국가다운 거대한 규모의 사원이다. 15,000명을 수요할 수 있다고 한다.
여행자도 내부 관람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이슬람 신자에 한해서만 내부 출입이 가능한 시간이었다.

날이 더워 인포메이션 데스크 앞에 앉아 있다.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후덕한 인상의 사내는 친절하게 나의 질문에 응대해주었다.
그리고 앞에 늘어놓은 작은 물병을 권하며 "공짜입니다. 나의 형제여!" 하고 말했다.

그의 넉넉한 웃음과 손짓이 (이븐바투타의 여행기에서 읽은) 14세기 성지순례를 떠난 이븐바투타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다마스커스의 한 교사 싸카위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병든 이븐바투타를 치료해주고 금화까지 건네며 말했던 것이다.
"유용할 때가 있을 터이니 받아두게. 형제여!"








센트럴마켓.
현지인들의 생활공간이라기 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점 성격이 강한 시장이다.

아내는 좋아하는 바띡옷 몇 가지를 이곳에서 샀다.
규모가 좀 작고 야시장은 아니지만 태국 방콕의 아시아티크를 생각하면 되겠다.






↓1998년 완공 이래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건물이자 상징이 된 페트로나스트윈 타워.
88층에 높이가 452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한쪽 건물은 삼성물산에서 지었다.
여행 전 딸아이가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예매를 해준 덕에 83층 전망대까지 올라가 볼 수 있었다. 






↓부낏 빈땅 지역은 밤이 되면 더욱 흥청인다. 음식점과 바와 나이트클럽 등이
밀집되어 번잡함
과 소음이 새벽녘이 되어서야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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