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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69 - 나태주의「그날 이후」

by 장돌뱅이. 2017. 6. 1.



 

 

33년의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업무적으로 개인적으로 외국인들과 인연이 많았다.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세태에 그 나이까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분히 그들의 도움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서로 이런저런 일로 지지고 볶고 부대끼며 지낸 여러나라의
-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폴, 중국, 홍콩, 인도, 대만, 미국, 멕시코 등등 - 그들.

퇴직을 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내게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건 아내와 딸아이였다.
이제까지의 직접적인 인연과는 다른 '그들'에게라도 그간의 고마움을 전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얼마간 공부를 하고 기회를 모색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부기관에서 해외로 내보내는 일이라 그런지 절차가 번거로웠다.
서류 전형과 면접을 통과했을 때만 해도 '따논 당상'의 당연한 일로 여겼는데
생각지도 않게 마지막 신체검사에서 낙방을 했다.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이가 드니 내 몸조차도 당연한 것은 없었던 것이다.

주위의 누군가 말했다.
"뭐야? 신체검사는 수석합격 하는 줄 알았더니!"
몇 가지 재검사 끝에 약 처방을 받은 건 콜레스테롤 뿐이었다.
난생 처음의 약을 인정하기 싫어 다른 대안을 물었더니 면담을 한 의사는 
운동의 양과 질은 더 이상 권할 수 없을 정도이니 약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퇴직을 하면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을 실컷 읽어보리라 마음 먹었지만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아내와 여행 횟수는 늘었지만 꿈꾸었던 한달 이상의 길고 여유로운 여행도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순은 살아온 날들을 지우라는 뜻이라는데 아직도 문득문득 지난 일들에 연연해 하기도 한다.
'그날 이전'에도 '그날 이후'에도 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인가 보다.
 
그래도 업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혼탁한 모습들과 보고서 속의 '숫자놀음'에서
해방되니
아직은 맑은 숲속에 들어선 양 쾌적하고 홀가분한 기분이다. 
아내와 특별한 것 없어 특별한 일상과 새로운 친구, 손자와의 보내는 시간이 고소하다.
새롭게 시작한 다른 공부도 재미있다.


병원에 다녀온 뒤 몸이 더 작아졌고
직장을 그만둔 뒤 마음이 더 작아졌다

날마다 집에서만 지내다가
가끔은 아내따라 시장에도 간다

아내가 생선을 사면 그것을 들고 다니고
아내가 잔치국수를 먹자 그러면 잔치국수를 먹는다

잔치국수 값은 2천 5백 원
오늘은 이것으로 배가 부르다

                       - 나태주의 시, 「그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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