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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68 - 백무산의「가방 하나」

by 장돌뱅이. 2017. 5. 16.

20대 중반의 나이에 한국에 와 40년 넘게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다
어느 날 조용히 자신들의 조국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수녀님의 이야기가
몇 해 전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 적이 있다.

내게도 인연을 맺은 수녀님이 한 분 계시다.
아내와 내게 천주교 입문 교리를 가르쳐 주신 스승님이신 아녜스 수녀님이시다.
수녀님은 수도자로서 영적인 생활을 하시면서도 우리 사회의 현실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제주 강정마을과 밀양 송전탑 현장, 세월호 그리고 최근 광화문 촛불 집회 등 열정적으로 참가하셨다.
아내는 아녜스 수녀님께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온 마리아 수녀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늘 씩씩하시고 유쾌하신 성품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문학소녀 같은 풋풋한 감성까지.

얼마 전 수녀님은 먼
이국으로 새로운 소임을 위해 출국하셨다.
도착하시자마자 안부를 궁금해하는 우리를 위해 사진 몇 장을 보내주셨다.
수녀님께서 흑진주 같다고 표현한 그곳의 아이들과 함께 강을 건너는 사진과
심한 피부병을 앓는 아이를 돌보는 사진이었다.
오로지 하느님 '빽'만 등에 지시고 절대 빈곤과 맞서 보시겠다는 당당한 수녀님.
동정이니 봉사니 하는 서툰 우월감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대등한 동행인으로
현지인들과 즐겁게 어울리실 것이다.


두 여인의 고향은 먼 오스트리아
이십대 곱던 시절 소록도에 와서
칠순 할머니 되어 고향에 돌아갔다네
올 때 들고 온 건 가방 한다
갈 때 들고 간 건 그 가방 하나
자신이 한 일 새들에게도 나무에게도
왼손에게도 말하지 않고

더 늙으면 짐이 될까봐
환송하는 일로 성가시게 할까봐
우유 사러 가듯 떠나 고향에 돌아간 사람들

엄살과 과시 제하면 쥐뿔도 이문 없는 세상에
하루에도 몇번 짐을 싸도 오리무중인 길에
한번 짐을 싸서 일생의 일을 마친 사람들
가서 한 삼년
머슴이나 살아주고 싶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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