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뜻밖의 복달임

by 장돌뱅이. 2017. 7. 14.

딸아이가 출가를 한 뒤 아내와 둘이 살면서 내가 부엌에서 음식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부엌살림에 대해 아내와 의견이 대립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냉장고를 보는 시각만 해도 그렇다. 아내는 이런저런 걸 채우자면 지금의 냉장고 용량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고 나는 그때그때 마트에서 사 오면 되니 구태여 냉장고에 저장해 놓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지구 환경보호에도 냉장고 용량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는 거창한 논리를 들이대보기도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것들로만 채우기에도 지금 우리 집 냉장고 용량은 모자라다는 아내의 논리를 이길 수 없다. 사실 우리 집 냉장고는 딸아이집과 비교해서도 작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냉장고 비우기를 선언하고 부지런히 비우고 아내는 부지런히 채운다.

그런 '비환경론자' 아내의 노력에 감사할 때가 있다.
바로 엊그제 초복날이다. 복날이니 그냥 넘어가기는 서운하다면서도 왠지 삼계탕은 진부해 보이고 그냥 과일이나 사다 먹자고 아내가 이야기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가만있어봐. 냉동고에 과메기 있는데 그걸로 복달임을 할까?"
복날에 과메기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었지만 다 저녁에 갑작스레 준비에 들어갔다.
상추와 깻잎을 사 오고 마늘과 쪽파를 썰며 부산을 떨었다.
"언제 과메기는 사다 놓았대?" 내가 묻자 아내가 기세를 올렸다.
"봐! 사다가 저장해 놓으니 좋지?"

예전에 겨울철이면 삼성동 포스코 뒤쪽에 있던 "강구미주구리"라는 식당에서 과메기 맛을 보곤 했는데, 미국 근무를 마치고 와서 찾아가 보니 식당이 없어지고 말았다. 대신 주변에 알음알음을 통해 산지의 신뢰할만한 곳에서 직송해서 먹는 방법이 생겼다. 꼼꼼한 아내는 그때마다 여분을 주문하여 냉장고를 채워왔던 것이다. '어설픈 환경론자'인 나는 아내에게 패배를 인정하며 겸연쩍은 웃음과 함께 우적우적 상추에 싼 과메기를 입에 넣었다.
"지구야 미안해. 과메기 맛이 너무 좋잖아. 날은 너무 덥고......"

과메기란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꼬챙이로 생선의 눈을 꿰서 말린 것'이라는 뜻의 관목어(貫目漁)가 (영일만에서는 '목'이란 말을 '메기' 또는 '미기'로 불렀으므로) '관메기'가 되었다가 관의 ㄴ 받침이 탈락하고 과메기가 되었다는 설과 '새끼를 꼬아 생선을 묶어 말렸다'는 의미로 과메기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어느 게 더 신빙성 있는 설인 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기록에(『경상도읍지』와 『영남읍지』)ㅍ"영일만의 토산식품 중 조선시대 진공품으로는 영일과 장기 두 곳에서만 생산된 천연가공의 관목청어(貫目靑漁)뿐"이라고 나온다고 하니 첫째 설이 우세하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다. 과메기는 내장을 빼고 말린 것(배지기)과 통째로 말린 것(통마리)이 있다고 한다. 나는 통마리는 먹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과메기 먹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컴퓨터 유래를 잘 안다고 컴퓨터 잘하고 차량의 역사를 잘 안다고 운전을  잘하는 게 아니니까. 과메기는 겨울이 제철인 꽁치 말린 것으로만 알고 있어도 충분하다. 과메기를 초고추장에 찍어 마늘, 쪽파, 고추, 양파를 넣고 김이나 생미역에 쌈 싸 먹으면 된다. 배추나 상추, 깻잎에 싸 먹어도 된다. 그냥 초고추장만 찍어 먹어도 뭐라 할 사람 없다. 그 어느 것이나 소주 한 잔을 곁들이는 건 필수다.


* 이 글을 읽은 아내가 우리 집 김치냉장고는 20년 가까이 된 최소용량의 모델이란 걸 꼭 밝혀 달랍니다. 자신은 결코 비환경론자가 아니라고.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손자 나의 친구  (0) 2017.07.25
감자 수제비  (0) 2017.07.23
햇감자  (0) 2017.07.02
고놈 이쁜놈  (0) 2017.06.26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0) 2017.06.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