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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나의 손자 나의 친구

by 장돌뱅이. 2017. 7. 25.

친구가 걷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집밖으로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양말 신을까?" 하면 친구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 갑자기 부산해진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그 자리에 놓고 자신의 양말과 신발은 물론
내 양말까지 재빨리 가져와 발치께에 놓는다.
  
아파트 단지 내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미끄럼틀을 오르내리거나
작은 숲길을 걷는 소소한 외출이지만 친구와 함께 하면 늘 흥미진진한 모험이 된다.

친구는 그네를 높이 타는 것보다는 적당한 높이에서 한껏 뒤로 재껴 눕는 자세를 좋아하고
미끄럼틀 자체보다 미끄럼틀의 계단을 좋아한다.
땀에 흠뻑 젖도록 지치지도 않고 계단을 오르내린다.
바닥에 떨어진 과자 봉지, 솔방울, 나뭇잎 등에도 관심이 많다.
놀이터를 질주하다가 갑자기 발을 멈추고 그것들을 줍곤 한다.
작은 개미의 움직임까지 포착해서 오래 바라보기도 한다.
이제는 한두 달 전처럼 무엇이건 입으로 가져가지는 않아 다행이다.

아파트 단지 내 인공의 화단과 숲, 그리고 잔디광장은 친구의 호기심이 왕성해지는 곳이다.
잔디 위에 저절로 돋아난 하얀 개망초와 토끼풀꽃, 민들레와 나리꽃 등을 친구는 가만히 만져보곤 한다.  
그 위를 날아다니는 하얀 나비와 꿀벌, 잠자리들에도 눈을 떼지 못 한다. 참새와 까치도 그렇다. 
더운 오후마다 물줄기를 뿜어올리는 분수와 주인과 산책 나오는 강아지들도 최고의 관심사 중의 하나다.

친구와 외출을 하면서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에 대하여 나는 친구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다.
작은 화단 속의 몇 가지 되지 않는 풀과 나무지만 그마저도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뾰족한 나뭇잎, 동그란 나뭇잎, 길쭉한 풀, 납작한 풀, 하얀꽃, 붉은 꽃 하는 식의 부실한 설명이 전부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상큼한 바람, 주차된 차에 대해서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해준다.
친구는 가끔씩 쳐다볼 뿐 나의  설명을 크게 이해하지도 주목하지도 않는 눈치다. 그래도 나는 쉬지 않고 말한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수다스런 사람인지 몰랐네."

친구는 산책 중에 누구와든 손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거침없이 달리는 걸 좋아하는 친구이기에 늘 넘어질까 아슬아슬 했는데,
최근에 『내 친구 푸푸』의 이야기를 여러번 읽어준 후론 자주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손 안에 잡히는 작은 꼼지락거림에 마음이 그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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