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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단골식당의 그 후

by 장돌뱅이. 2017. 10. 13.


아내와 한강 변을 한 시간쯤 걸으면 다다르는 곳에 단골식당이 있다.

삼겹살과 김치찌개(그곳에서는 돼지찌개라고 부른다.)와 두루치기만 내는 곳이다.

아내와는 성격이 정반대에 가까울 정도로 털털한 성격의 주인 아주머니는
외동딸을 출가 시키고 손자의 나이도 비슷한 데다가, 미국 생활 경험의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식당에 갈 때마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두 사람의 대화에 까어드는 유일한 순간이지만)
서로의 손자 사진과 동영상을 자랑처럼 보여주기도 하면서.

얼마 전 여느 날처럼 한강을 걷고 출출한 배를 문지르며 식당에 들어섰을 때
평상시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우선 손님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나름 주변에선 김치찌개로 알려진 곳이라 손님들이 없진 않았지만
이른 시간에 그렇게 많은 손님은 처음 보았다.

서빙을 하는 아주머니도 한 분 뿐이었는데 남자와 여자 한분씩이 더 있었다.
보통은 우리가 가면 우리 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주인 아주머니는
바쁘게 주방과 식당과 카운터를 오고가며 눈인사만 보내주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왜 이렇게 손님이 많지?' 하는 의아한 눈빛을 아내와 나누다가
벽면에 붙은 액자를 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식당이 소개된 것이었다.
"**미식회!"

"앗! 사장님 텔레비젼에 나왔네요!"
잠시 숨을 돌린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 자리에 왔을 때 우리는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는 손사레를 치며 속사포처럼 그간의 사정을 말했다.

"아이고 말도 말아요. 말도 말아. 그동안 우리는 주로 단골손님만 조용히 왔다가는 식당이었잖우."

"그런데 그 방송이 나간 뒤로는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이건 당최 감당이 안 되요.
방송 뒷날엔 재료가 떨어져서 오후에 일찍 문을 닫았지 뭐유." 

"그 뒷날은 더 많이 준비를 해놓았는데도 더 많이 손님이 와서 더 일찍 문을 닫았어요."

"내가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이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멀리까지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줄 처음 알았어요.
며칠 전에는 제주도에서 온 분도 있더라니까."

"주차공간도 모자라서 난리가 나고 손도 모자라서 사람들도 더 들이게 되고.
그래도 손은 점점 더 모자르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네요."

'그래도 돈을 많이 버시니 신나잖아요' 했더니 손사레에 도리질까지 더했다.

"장사하는 사람이 오는 손님을 모시는 게 도리라 하긴 하지만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에요.
몸이 아픈데 쉴 수도 없고 손주를 보러 갈 시간도 없고." 

"게다가 어떤 손님은 아침에 전화를 해서 왜 문을 안 여냐고 하길래
우리는 **시부터 문을 연다고 했더니 그럼 왜 인터넷에는 ##시 부터 연다고 되어 있느냐고
대뜸 욕설부터 하더라니깐요. 저희가 인터넷에 그런 정보를 직접 올린 적도 없는데 어디서 보구 하는
소린지 모르겠어요. 하여간 이제껏 수십년 장사하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종류의 진상 손님을
지난 한 달간 다 경험하고 있다우."

"배부른 소리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까지 단골손님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한가하게 지내던 시절이 훨씬 좋지······. 

우선 몸이 얼마나 견뎌낼 지······. "

보름쯤 뒤에 다시 식당을 찾았다.
홀에서 서빙을 하는 낯익은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기어이 몸이 탈이 나서 병원에······."
손님들 사이를 부산히 오가던 주인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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