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

지난 여행기 - 2003발리5

by 장돌뱅이. 2017. 8. 15.

63. 트래킹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내와 딸아이는 아직 잠 속이다.
발리인들은 잠이 들면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자는 사람 주변에 머무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는 사람을 갑자기 깨우는 것은 영혼이 다시 몸속으로 회귀하는 시간을 빼앗을 수 있어 위험하다고 믿었다.

나는 발리인들의 믿음처럼 아내와 딸아이의 영혼이 놀랄까 살며시 문을 닫고 나왔다.

걷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비디오가게와 치킨집, 생고기구이에 뼈다귀해장국집이 붙어선 동네 골목길을
낯익은 이웃들과 눈인사를 교환하며 걷는 것도 그렇고, 한강변을 따라 이어진 시멘트 길을 걷는 것도 그렇다.

한적한 바닷가나 툭 터진 사방의 시계를 확보하고 걷는 산 능선에서의 걸음도 행복하다.
걷기는 ‘세상을 여행하는 방법이자 마음을 여행하는 방법’이라 하지 않던가.
하물며 간밤의 비로 불어난 경쾌한 또랑물 소리를 들으며 논 사이의 소로를 따라 내딛는 우붓에서의 발걸음이랴!

“방안에 있을 때 세계는 내 이해를 넘어선다.
그러나 걸을 때 세계는 언덕 서너 개와 구름 한 점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윌리스 스티븐스 -

 

64. CANDI DASA로

트래킹에서 돌아오니 아내와 딸아이는 스파에서 손톱을 다듬고 있었다.
종업원에게 한 손을 맡긴 채 딸아이는 처음 해보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를 보더니 이미 매니큐어가 칠해진 한쪽 손을 들어보였다.
조금은 겸연쩍어 하면서도 만족스러움이 그녀의 얼굴에 가득했다. 나 역시 덩달아 즐거워졌다.




점심을 한 뒤 ALIA UBUD을 떠나 짠디다사에 있는 ALIA MANGGIS로 숙소를 옮겼다.
ALILA MANGGIS는 원래 이름이 THE SERAI였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은 단순한 구조와 외관으로 전체적으로 평범하였으나 깔끔하고 안락한 숙소였다.


*위 사진 : ALILA MANGGIS의 숙소 2층 가운에 베란다에서 아내와 딸이 책을 읽고 있다.


2층의 우리 방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초록의 잔디와 정사각형의 수영장은 야자나무와 어울려

시원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너머로 바다가 있었다. 몸으로 즐길 수 있는 바다는 아니나
눈으로 드넓은 바다의 파란 색감을 가슴에 담고 귀로 파도소리를 감상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아내와 딸아이는 모두 ALILA 우붓보다 망기스를 좋아했다.
망기스로 와서도 우리가 하는 일은 변하지 않았다.
책을 읽거나 수영장 속에 있거나 그냥 빈둥거리기.


*위 사진 : 수영장 건너 우측으로 보이는 ALILA 식당 야경


저녁이 왔다. 하는 일 없이 늘어져 있어도 배는 고파왔다.

우붓에서처럼 ALILA 망기스에도 단 하나의 식당이 있다.
그렇지만 ALILA MANGGIS의 식당 역시 상당한 유명세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이곳의 요리 교실은 예전부터 유명하다고 한다.
발리의 대부분의 식당이 그렇듯 이곳에서는 BALINESE, INDONESIAN, INTERNATIONAL, & SEAFOOD 등
모든 음식이 가능했다. 사방이 툭 터진 식당에는 시원한 바람이 끊이지 않았다.
모기 따위의 물것도 없어 식사를 하기에 쾌적했다.

우리 가족은 기본적으로 서양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행지에서는 그곳 현지 음식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발리에 온 후로는 식당 MOSAIC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도네시아나 발리 음식만 고집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데 ALILA 망기스 도착 첫날밤에는 다섯 코스로 나뉘어져 나오는 서양 음식을 시도하였다.

메뉴판 음식 설명에 쓰여진 “ROMANTIC"이라는 단어에 약해진 탓인지도 몰랐다.
전채 요리는 평범하였으나 메인으로 나온 스테이크는 우리 가족 모두가 대단히 만족을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수영장가로 걸어갔다. 의자에 발을 뻗고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 또한 내가 여행을 하면 습관처럼 반복하는 일이다.
총총히 별들이 돋아나 있었다.
손을 뻗어 아내와 딸아이의 손을 잡고 나는 윤동주의 시처럼 아무 걱정도 없이 밤하늘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했다.

'여행과 사진 > 인도네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난 여행기 - 2003발리7(끝)  (0) 2017.08.16
지난 여행기 - 2003발리6  (0) 2017.08.15
지난 여행기 - 2003발리4  (0) 2017.08.14
지난 여행기 - 2003발리3  (0) 2017.08.14
지난 여행기 - 2003발리2  (0) 2017.08.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