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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

지난 여행기 - 2003발리4

by 장돌뱅이. 2017. 8. 14.

58. 식당 AYUNG 테라스

늦은 기상.
늦은 아침.
수영.
책읽기.
수영.
다시 책읽기.
다시 수영하기.
......
파란 하늘.
초록 숲.
투명한 햇살.
싱그러운 바람. 


고개를 돌리니 딸아이는 책을 가슴에 덮고 두 팔을 머리 뒤에 고인 채 말없이 먼 하늘을 보고 있다.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흰 뭉게구름 위에 자신의 먼 앞날을 그려보기라도 하는 것일까?
아직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았고 아무 것도 규정되지 않은, 광야처럼 비어있는, 
이슬 내린 푸른 새벽길 같은 그녀의 미래가 문득 부러웠다.

주차장에서 사무실까지 10분 정도 걸리는 것을 감안하여
매일 아침 8시쯤이면 나는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어야 하고 열두시면 '사규에 따라' 배가 고파야 한다.
어느 소설가의 말대로 그때쯤이면 맞은 편 빌딩에서도 흰 와이셔츠를 입은
또 다른 무수한 '내'가 팝콘처럼 밀려 나올 것이다.
저녁이면 꼭 졸리지 않아도 내일의 출근을 위해 잠을 청해야 하고, 2주에 한번씩은 머리를 깎아야 하고,
매일 아침 면도기를 들고 거울 앞에 서야 한다.
결혼을 하고 첫 출근을 하던 날, “이제 남은 일은 죽도록
일하다 늙고 병들어 죽는 일뿐”이라던 직장 상사의 짓궂은 농담이 때때로 심오한 진리처럼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여행은 그 울타리와 규정을 잠시일지언정 풀어둘 수 있는 시간이어서 소중하다.

수영장에서 한껏 늘어져있던 끝에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는 익숙했던 열두시에서 한참이 지나 있었다.
우리는 UBUD FOUR SEASONS의 부속 식당 AYUNG TERRACE로 갔다. 리조트 자체가 급경사의 아융강 계곡
경사면에 지어져 있어 식당은 이름 그대로 아융강을 내려다보는 테라스 같다. 바깥쪽에서 식당을 올려다보면
반원형의 거대한 시멘트 건물이 절벽에서 튀어나오거나 나머지 반이 절벽으로 박힌 것 같아 주변의 자연과
썩 잘 어울려 보이지는 않지만 식당에서 내려다보는 아융강 주변은 온통 얼레빗같은 야자나무잎이
휘어져있어 시원스러웠다.


*위 사진 : BALINESE SATAY


*위 사진 : POT STICKERS


* 위 사진 : SPC NOODELS

세가지 음식 모두가 특급리조트의 부속 식당답게 맛깔스러웠다.
주문에서부터 계산을 할 때까지 종업원들의 서비스는 상냥하고도 정겨웠다.

우리가 ALILA에서 왔다고 하자 식당 종업원이 ALILA에는 투숙객이 많냐고 묻는다.
작년 사리 클럽의 폭탄 테러 이후 급속히 줄어든 여행객들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
그들로서는 생존 문제와 직결된 관심이리라. 다음에 올 땐 포시즌에도 들려 달라고 한다.
그들의 선한 표정이 잠시 마음을 애잔하게 흔들었다.

어처구니없는 광기의 폭력이 이곳 발리에서 의도한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무엇이 남았는가?


59. SPA 그리고 자전거 타기


*위 사진 : 아내와 딸아이가 경험한 ALILA 내의 만다라 스파

식사를 마치고 ALILA로 돌아와 아내와 딸아이는 호텔내에 있는 MANDARA SPA로 갔다.
식구들이 스파를 하는 동안 나는 자전거를 타고 ALILA 주변의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호텔에는 자전거로 돌아볼 수 있는 주변 약도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처음 얼마 동안 약도의 길을 따라가다 나는 마음이 닿는 대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논길을 따라 가며 들일을 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머리에 짐을 이고 걸어가는 아낙네들에게선
수줍어하면서도 왁자지껄한 웃음을 건네 받았다. 큰길에서 갈라지는 샛길을 따라 들어간 마을의 작은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먹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기억도 할 수 없는 길을 땀을 흘리며 돌아다녔다.




이곳저곳에서 나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 공동작업을 하는 광경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작업장 입구에 걸린 등이라던가 화려한 장식의 도구들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장례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소품을 준비하는 옆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행사에 쓰일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생고기를 꼬치에 꿰고 기름에 튀기고 봉지에 싸고.
나는 막연히 여러 곳에서 우연히 초상이 많이 난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알아보니 초상은 오래 전에 난 것이고
공동묘지에 가매장 해두었던 뼈를 모아 공동으로 화장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발리인들에게 육신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고 껍데기이다.
육신이 죽으면 영혼은 그 곁을 떠나 더 좋은 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습관처럼 육신에 머무르게 된다.
그래서 화장(CREMATION)을 통하여 영혼을 육신으로부터 해방시켜주어야 한다.
때문에 발리인들에게 CREMATION은 주검을 불태우는 슬픔의 행사가 아니라
영혼을 해방시키는 즐거운 축제가 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행사는 매우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돈 많은 사람들은 사망 후 바로 화장을 할 수 있으나 가난한 사람들은
일단 공동묘지에 묻히어 경제적인 준비가 되기까지 수 년을 기다릴 때도 있다고 한다.
그 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특별한 날을 잡아 화장을 하게 된다.

죽음이 의미하는 어둡고 침통한 분위기를 밝은 축제로 바꾸는 발리인들. 
그들은 낯선 곳에서 온 이방인인 나에게도 마음을 열고 환영하며 그 밝은 분위기를 스스럼없이 전해 주었다.

만들던 음식을 집어 먹으라 권하며 사진 찍는 것도 흔쾌히 허락해 주는 것은 물론
카메라 앞에서 익살스런 표정까지 보여 주었다.
발리의 물질적 가난은 애석한 일이지만 가진 나라의 만족 없는 탐욕이나
광기의 폭력을 앞세우는 무지함은 저주받아야 할 더 큰 정신적 가난이다.


60. BEGAWAN RESORT 와 식당 KUDUS

고급 리조트인 BEGAWAN GIRI ESTATE는 두세 시간 동안 계속된 자전거 여행의 반환점이 되었다.
영국인이 주인이라는 이 리조트는 잘 가꾸어진 공원이라 해도 좋아 보였다.
가격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입구에서부터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자전거 페달을 밟느라 땀을 흘려 목이 탔던 나는 리조트 내에 있는 식당 KUDUS HOUSE에서 빈땅 맥주를 마셨다.
식당은 150년 이상된 자바 스타일의 목조 건물로 고전적인 분위기와 그에 걸맞는 어떤 격조 같은 것이 풍겨 나왔다.
우붓의 다른 식당처럼 이곳도 계곡을 내려 볼 수 있는 경사면에 지어져 있었다.
맥주를 마시며 풍경 사진을 찍자 종업원이 조용한 목소리로 외부인의 사진 촬영은 금지하고 있다고 알려 준다.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금기의 엄격함보다 ‘발리스런’ 따뜻함이 느껴졌다.
나는 사과를 하고 카메라를 접었다.

 

IT MAY BE EXPENSIVE, BUT THERE ARE SOME TREATS IN LIFE, THAT IT IS DIFFICULT TO VALUE ON.
A LUNCH AT KUDUS HOUSE IS ONE THAT WILL REMAIN FOREVER IN YOUR MEMORY.


인터넷에서 읽은 식당 KUDUS HOUSE에 대한 극찬이다.

맥주만 마신 나로서는 그 음식까지 평을 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음식이나 비싼 가격의 문제를 떠나
우붓의 중심가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식당의 위치 때문에 일반 여행자가 가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61. TERAZO
자전거타기를 마치고 ALILA로 돌아오니 아내와 딸아이는 막 스파를 끝낸 참이었다.
만족함과 개운함이 둘의 얼굴에 쓰여 있었다. 둘은 이구동성으로 어제의 맛사지보다 더 좋았다고 한다.

다시 셋으로 합친 우리는 우붓으로 나갔다. 우붓에서 할 일을 한가지만 꼽으라면 그것은 걷는 일이다.
어제처럼 또 거리를 걸었다. 다리가 아프면 고개만 돌리면 된다.
도로 양편으로 분위기 있는 식당과 카페가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TERAZO는 우붓 시내의 중심부 우붓팰리스 앞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JALAN SUWETA에 있다.
벽면의 장식한 노란 원색과 장식품들은 서구적인 카페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리는 식사는 하지 않고 음료수와 한가한 잡담으로 잠시 머물다 나왔다.


62. 식당 IBAH



식당 IBAH는 은은한 조명으로 밝혀진 숲 속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식당이었다.
우리는 메인 식당 바깥 쪽의 잔디밭에 지어진 작은 정자에서 식사를 하였다.

이날 저녁 식사 내내 손님은 우리뿐이어서 마치 식당의 모든 종업원의 접대를 받는 느낌이었다.
인사를 하러 온 주방장은 인도네시아인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요청하지도 않았음에도 호텔까지 돌아가는 차편을 제공하여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사람들이 많아 다소 번잡스런 느낌까지 주는 MOSAIC보다 더 호감이 가는 식당이었다.


*위 사진 : PUMPKIN SOUP


*위 사진 : CORIANDER PRAWNS


*위 사진 : BALSAMIC GRILLED CHICKEN


*위 사진 : CURRY CRABS

2003년 6월 25일자 방콕의 영자신문 ‘THE NATION’에는 “LESS HASTE, MORE TASTE”라는 글귀로
‘SLOW FOOD MOVEMENT'를 소개하면서 운동단체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였다.

“YOUNG PEOPLE NEED TO BE EDUCATED ABOUT TASTE.
THEY SHOULD BE ABLE TO DISTINGUISH HIGH-QUALITY TOFU FROM INDUSTRIAL TOFU,
JUST LIKE BEING ABLE TO TELL GOOD JAZZ FROM BAD MUSIC.

WE NEED TO WORK ON REBUILDING THE QUALITY OF FOOD - AND LIFE.”

식당 IBAH를 나오며 떠오른 기사이다.
누구나 기왕에 먹지 않고 살 수 없고 먹는다면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을 것이다.
발리에서도 우붓을 지나며 제대로 된 (슬로우 푸드 같은) 한끼를 사먹고 싶다면
식당 IBAH를 기억해 두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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