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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

지난 여행기 - 2003발리7(끝)

by 장돌뱅이. 2017. 8. 16.

67. 마지막날



아침 해변을 걸었다. 어제완 달리 멀리 해변 끝의 마을까지 걸었다.
사람들이 바다에서 그물로 고기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물 한 끝을 잡고 나도 거들었다.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시늉뿐이었겠지만. 발리 사람들처럼 어울리기 쉬운 사람들이 있을까?
가끔씩 내게 그것은 친근함을 넘어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십여 명이 몸에 물을 적셔가며 거둔 소출이라기엔
잡은 고기가 너무 적어 보였지만 그들로 하여 활기차고 싱싱한 아침 해변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의 수영을 마치고 식당에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빈땅 BINTANG 맥주를 마셨다.
짐을 꾸리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차편으로 우리는 꾸따까지 왔다.



딸아이가 동행하지 못한 이전의 발리 여행 중 아내와 나는 하드락카페에서 BBQ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은 적이 있다.
그때 아내는 육류를 좋아하는 딸아이를 들먹이며 그녀의 부재를 무척 아쉬워하며 딸아이에게 꼭 그것을 맛보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지니게 된 것 같았다.

세상에 자식의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는 광경보다 흐뭇한 일은 없다.
딸아이는 아내의 생각대로 하드락의 음식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68. 끝(사리클럽 현장에서)

 

우리가 발리에서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일년 전 비극적인 폭탄 테러가 있었던 사리클럽의 현장이었다.
당시에 아내와 나는 비극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발리의 짐바란에 있었다.
그 이전에도 나는 사리클럽에서 맥주를 마시며 사진을 찍은 적도 있었다.
테러의 소식은 더욱 끔찍한 경험이었다.


현장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한 무더기의 검은 재와 죽은 영혼에게 바쳐진 꽃다발,
사라져버린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애절한 시를 적은 종이가 걸려 있을 뿐.
사랑하는 사람을 흔적도 없이 잃어버린 이들에게 그리고 그 여파로 직장을 잃거나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된 발리인들에게, 그리고 그것과 아무런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우리들에게까지도
테러(리스트)는 ‘FUCKING'한 것임에 틀림없다.
테러는 그림자라는데 일상화, 무차별화, 세계화, 다양화 되어가는 그 테러의 실체는 무엇일까?
두려운 마음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사리 클럽의 울타리에는 붉은 색으로 ‘FUCK TERRORIST' 라고 쓰여 있었다.
단순히 발리 사리 클럽에 폭탄을 터트린 세력에게만 보내는 저주가 아니라 
무력으로만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전 세계의 모든 국가와 세력들에게 보내는 저주여야 하리라.

수백 년의 식민통치 속에서도 발리인들은 그러나 자신들의 신을 지켰고 춤과 음악과 그림을 잃지 않았다.
가난할지언정 소박하고 맑은 사람들의 심성이 빛나는 곳, 발리는 발리이기에 세상에게 보배로운 곳이다.
탐욕스런 삼류 정치와 폭탄을 앞세우는 무지몽매의 잔인한 논리는 제발 발리에서만이라도  떠나라.
그래서 오래도록 발리를 발리로 남게 하라.
공항으로 향하며 나는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2003년 8월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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