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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

지난 여행기 - 2004발리2

by 장돌뱅이. 2017. 8. 17.

71. 울루와뚜 ULUWATU 유감

10여 년 전 우리 가족이 처음 발리를 갈 때 자카르타 대사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인니어를
가르쳐주던 한 강사는 울루와뚜사원을 ‘절벽사원’이라 부르며 반드시 들려봐야 할 곳으로 추천해 주었다.

오래된 전설이 담긴 사원의 이국적인 탑과 건물, 까마득한 절벽과 그 아래 한껏 펼쳐진 망망대해,
끝없이 부서지는 하늘색 포말. 그리고 그런 것들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한적하고 고요한 분위기.

아내와 나는 울루와뚜에 흡족했고 그 강사의 추천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위 사진 : 딸아이 어렸을 적의 발리 울루와뚜

우리는 그 때 울루와뚜를 신과 인간이 교통하는 장소가 될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사원을 어슬렁거리던 원숭이 떼였다. 원숭이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던가.
좋아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기 위해 아내와 나는 원숭이들이 좀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바랬다.
그러나 조심성 많은 놈들은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않아 우리 애를 태웠다.

낯이 좀 익고 나서야 용기있는 한두 마리가 내 어깨 위까지 올라와 딸아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인간에게 예의를 차리는 듯 거리를 두면서도 가끔씩은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온순한 원숭이들을 보면서
힌두교 설화에서 영물로 그려지는 이유를 이해할 것도 같았다.

아침을 먹고 영화 한편을 보며 방에서 뒹굴다가 길을 나섰다.
호텔 앞에서 발리택시를 잡아 미터요금을 주기로 하고 울루와뚜 사원으로 향했다.
울루와뚜사원은 발리의 남쪽에 동그란 자루처럼 생긴 부낏반도(BUKIT PENINSULA)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사원이다.

인도네시아어로 언덕을 의미하는 부낏 BUKIT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반도의 해안선의 대부분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울루와뚜 사원도 인도양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다.
울루와뚜사원의 본래 이름은 PURA LUHUR ULUWATU 이다.
11세기에 창건된 이래 원래는 덴파사르 지역을 통치하던 군주의 소유로 군주 혼자서만 신에게 예물을 바치던 곳이라고 한다.

사원까지 가는 동안 운전수는 예의 그 원숭이 이야기를 꺼냈다. 안경을 벗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모르지만 10여 년의 시간동안 순진하던 원숭이들은 마치 사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폭’같은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 원숭이들에 대한 주의는 이미 발리 여행의 한 상식이 되어버린 듯 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종종 원숭이로부터 피해를 당하고 나 역시 몇 해 전 안경을 빼앗긴 적이 있다.
원숭이의 기습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사진을 찍는 잠깐 동안의 방심을 놈들이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선글라스라고 해도 마찬가지겠지만 나처럼 시력이 나빠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에게 안경은 신체의 일부이기도 한 것이다.
그 때 한 노인이 다가와 안경을 찾아주겠다고 얼마간의 돈을 요구했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내밀다보니 낯선 여행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엔 다분히 모욕적인 기분이 들었다.


사원 입구에서 입장권을 끊으려니 그 때 바로 그 노인인 듯한 사람이 가이드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가이드라기보다는 원숭이의 습격으로부터 보디가드를 해주겠다는 제의(提議)일 터
-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판에 끼어든 ‘호구’같은 느낌이 들어 거절했다.

아내는 사원 입구에서 앞서간 누군가 호신용으로 사용했을 나뭇가지를 주워들었다.
아내의 기세에 눌려서인지 원숭이들은 이 날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다.
‘우리 집안의 경제권과 군사권을 한꺼번에 쥔’ 아내의 내공을 그 놈들도 한눈에 알아보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한적하고도 상쾌한 사원을 느긋하게 산책하거나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고 넓은 바다를
해지는 줄 모르고 바라볼 수 있는 자유대신에 볼썽 사납게 나뭇가지로 무장하고
전선의 수색대처럼 굳은 자세로 돌아다녀야하는 여행지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울루와뚜에서 큰길로 다시 나와 남쪽으로 내려가면 BLUE POINT BAY VILLAS가 나온다.
그곳에서 보는 바다며 해안 풍경 역시 울루와뚜에서 보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원숭이들이 옛 심성을 회복할 때까지 울루와뚜 대신에 이곳을 대안으로 삼아도 크게 억울할 것은 없겠다.
더군다나 파도 위를 경쾌하게 미끄러지는 서핑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절벽 아래 쪽 바다를 향해
검붉게 그을린 젊은이들이 자기 키만한 서핑보드를 들고 내려가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싱싱했다.

아내와 나는 창문이 많은 BLUE POINT BAY VILLAS의 식당에서 냉커피를 마시며
바닷바람을 깊게 호흡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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