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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

지난 여행기 - 2004발리3

by 장돌뱅이. 2017. 8. 17.

72. 식당 알랑알랑 ALANG-ALANG

얼마 전 아내와 함께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대겸제(大謙齊)전을 보러간 적이 있다.
도록을 통해서나 보던 겸제의 박연폭포나 금강산 그림을 실물로 보니 역시 이름만큼 대단하였다.

그런데 이 날 우리를 가장 감동스럽게 한 것은 그런 유명한 그림 자체보다 한 그림의 제목이었다.
“종소리를 어떻게 그리지?”
앞서가던 아내가 한 그림 앞에서 멈춰 서서 중얼거렸다.

아내가 바라보는 그림의 제목은『연사모종(烟寺暮鐘)』이었다.
‘안개에 잠긴 절에서 들리는 저녁 종소리’라.그림에는 갓 쓰고 도포를 입은 선비 하나가 중과 함께
개울을 막 건너 소나무 숲길로 들어서려고 하고 있었다. 멀리 산허리에는 안개가 둘러 있고 길은
산 중턱에 위치한 절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길과 숲을 건너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건너오고 있음직 했다.
그림이 인간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라면 청각적인 ‘종소리’란 제목은 가히 파격적으로 느껴졌다.
아마 겸제는 눈에 보이는 풍경뿐만 아니라 귀에 들리는 소리까지 그림에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대가다운 발상이고 솜씨였다.

스미냑에 있는 식당 알랑알랑 ALANG-ALANG은 이번 여행중 최고의 식당이었다.
그러나 앞선 겸제의 능력을 빌려오지 않는 한 나의 사진과 글로는 그 경험을 적절하게 옮기기는 힘들 것 같다.

어둠과 바람, 파도와 구름, 반짝이는 별과 일렁이는 촛불, 맛깔스런 음식과 특별한 서비스 등등 하나하나가
감동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 개별적인 요소들이 합쳐져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상승효과는,
나로서는 설명하기 힘든, 환상적이고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꾸따해변에서 저녁노을을 보고 컴컴해질 때까지 앉아 있다가 스미냑 산티카빌라의 부속 식당인 알랑알랑에
들어서자 서너 명의 직원이 우리만을 기다렸다는 듯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리고 바닷가 쪽 잔디 위에 촛불에 둘러싸인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아내와 나는 기대 이상의 좌석 배치에 잠시 놀랐다.
전화로 예약을 할 때 내가 해변 쪽 좌석을 요구하면서 ‘비치프론트’ 라고 하였더니 식당 바깥에 있는 잔디에
우리만을 위한 별도의 좌석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곳에는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만이 귀에 가득했다.
우리는 우리를 피곤하게 했던 세상의 모든 소음과 단절된 심연의 세계에 들어와
하늘 아래 우리만 있는 듯한 감미로운 기분에 젖어 들었다.

알랑알랑 식당의 좌우로는 이름난 라루치올라와 더러기안 그리고 꾸데따 등이 포진하고 있다.
때문에 알랑알랑의 분위기는 알랑알랑만의 것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알랑알랑의 식당 자체의 모습은 여타의 발리의 식당처럼 평범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알랑알랑은 라루치올라처럼 고객의 식사 시간을 제약하는 유명식당의 거만함(?)이 없는
발리적인 상냥함과 극진함이 있어 사랑스러운 곳이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손님이 우리뿐이어서
모든 직원들의 주목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행운이었다.

직원들은 MAIN으로 BABY BACKS WITH BBQ SAUCE를 추천했지만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평범한 인도네시안 음식 몇 가지와 와인을 주문했다.

디저트로 망고 한 접시까지 시키니 부른 배만큼이나 너무 흡족한 저녁이 되었다.
식당을 나오며 아내와 내가 한 다짐은 “열심히 살자!”였다.
그토록 아름다운 밤을 경험하고서 그렇게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격이 주변의 이름난 식당에 비해 ‘터무니없이’ 저렴한 것을 ‘또 하나의 감동’이라고 적기엔 쑥스럽지만
매력적인 사항은 될 것이기에 알랑알랑이 인도네시아어로 갈대를 의미한다는 사실과 함께 부기해 둔다.

*<아내 곱단이의 글>
남편과 나는 며칠간의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하며 우리 나름의 출정식?을 가진다.
가벼운 흥분과 설렘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 하며, 안전한 여행을 기원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특별한 산행만큼이나 예쁜 이름의 식당 알랑알랑은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산티카 빌리지에 도착하여 레스토랑을 찾았을 때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입구의 직원은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며 안내를 했다.
우리만을 기다리며 준비해 둔 -
넓은 잔디 위에 몇 개의 촛불, 식탁 위에 다시 2개의 촛불,
그 위에 작은 파라솔,
그리고 넓은 잎사귀 위에 써있는 우리의 이름에
남편과 나는 눈을 서로 몇 번이고 마주치며 기대 이상임을 인정해야 했다.
남편은 나는 그저 비치사이드쪽에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했을 뿐인데.....” 라고 감동스러워 했다.

바다에는 점차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파도 소리만 사방에 가득했다.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의 식당 쿠테타에서 밝은 불을 비춰 바다에서 몰려오는 파도를 볼 수 있게 조명 시설을 해놓고 있었다.
덕분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멀리 예쁘게 보였다.
그러나 나는 어두움이 완전히 내려앉은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파도가 더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분위기에 맞게 와인을 주문해줬고, 매니저는 비교적 값싼 와인을 권했음에도 맛이 일품이었다.

인도네시아 음식을 좋아하는 우리는 몇 가지 음식을 주문했고 역시 훌륭했다.
후식으로 내가 특히 좋아하는 망고까지라니!
지금도 눈을 감으면 우리 둘만을 위한 그날 밤 그 바다가 그림처럼 선명히 떠오른다.
어두움과 촛불, 바다와 파도소리. 와인과 인도네시안 음식, 그리고 가장 소중한 남편과 나.
완벽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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