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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

지난 여행기 - 2004발리5

by 장돌뱅이. 2017. 8. 18.

75. 바뚜르산 GUNUNG BATUR 산행

전화벨.
새벽 1시 50분.

운전수 뿌뚜 PUTU와 2시에 만나기로 한 약속에 대비하여 미리 부탁해 놓은 WAKE UP CALL이다.
부시시 몸을 일으켜 졸음을 쫓기 위해 가볍게 스트레칭부터 해보았다. 그래도 졸음은 쉽게 뿌리쳐지지 않는다.
초저녁에 꾸려놓은 배낭을 메고 방문을 열고 나서자 우붓의 새벽 공기가 서늘하게 감겨왔다.
테라스 난간을 잡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초롱하다. 비로소 가벼운 설렘이 일며 졸음이 안개처럼 벗겨졌다.

건기 중에서도 비를 볼 확률이 제일 낮은 7월임에도 발리에 도착한 이래 이틀 밤을 연속해서 비가 내렸기에 다소 걱정이 되던 터였다.
정확히 두 시가 되자 뿌뚜의 차가 도착했다. 그동안 메일로만 약속을 주고받았던 터라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출발을 했다.

가자!
바뚜르 산으로!

한 때 아내와 함께 설악산을 오르는 것을 새해의 계획 속에 반드시 집어넣던 때가 있었다.
문제는 늘 아내의 체력이었다.
학창 시절 농활 때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강철 체력을 보여주었던 아내는
결혼 후 시간이 흐르면서 예전의 ‘깡다구’를 점차 잃어 가고 있었다.
(이 점에 대해서 나는 부실한 남편 때문에 고생을 한 탓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을 갖고 있다.)
해서 등산 시점을 여름휴가 때로 잡고 그때까지 매월 우리가 사는 도시 주변의 야트막한 산부터 오르는
아내의 체력 보강 계획을, 월드컵을 준비하는 히딩크 감독처럼, 골몰하며 세워보기도 했다.

내 자신 산행 이력이 보잘것없으면서도 나는 한국인이라면(혹은 한국에 자주 오는 외국인이라면)
설악산과 지리산 그리고 한라산 정도는 올라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남북통일이 된다면 또 몇 개의 산이 추가되겠지만 적어도 그전까지는 말이다.
다분히 내 취향에서 생각한 것이므로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산길을 걷고 산을 보는 것이 내게는 너무 아름답고 좋기 때문이다.

세상의 내가 가장 좋다고 느끼는 것을 주위 사람에게,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권해보는 것은 당연한 노릇 아닐까?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강요 사항이 아니고 추천사항일 뿐이다.

그러나 결심의 횟수와는 달리 아직까지 우리 부부는 함께 설악산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나 혼자서만 몇 번인가 다녀왔을 뿐이다. 직장 생활에 얽매이다 보니 계획했던 산행을 자주 실행에
옮기지 못한 탓에다가 해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초의 결심이 점차 느슨해진 까닭도 있겠다.

산행을 해도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중간에서 돌아온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산행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
아내는 내게 '실미도 조교같다'고 툴툴거리면서도 내심 땀 흘리는 즐거움을 깨달은 양,
근래에 들어 서울 근교의 산으로 자주 산행을 다니면서 어느 정도는 자신의 체력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한 듯했다.
내가 아내와 함께 바뚜르산행을 계획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의 그런 자신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 세시가 넘어 산행 출발지인 또야붕까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는 게 보였다.
산행을 동행할 가이드 마데와 악수를 하고 나자 누군가 옆에서 또 손을 내민다. 엉겁결에 손을 잡고
누구냐고 물으니 나중에 콜라를 팔려고 동행을 하겠단다. 12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바뚜루산 산행기에
자주 나오는 Cola-Seller였다. 등산객들과 2시간 남짓 동반 산행을 한 후 산정상에서 콜라를 파는 것이 그의 일이다.
한 병에 2만 루피아.
그것을 반드시 살 필요는 없겠으나 가이드 비용과 함께 바뚜르 산 등산의 입장료
정도로 생각한다면 무리가 없겠다.
예상했던 것보다 날씨가 추웠다. 아내는 긴 팔 스웨터를 꺼내 입었다.
(가이드 고용은 주민의 생계 수단 정책인지 바뚜르산 등산을 위해서 필수였다.
물론 산은 가이드 없이도 올라갈만하다.)

3시 30분.
아내와 나, 가이드와 콜라소년에 운전수였던 뿌뚜까지 가세해 5명이 된 우리 팀은 이날 산행자 중에
첫 번째 주자로 새벽길을 더듬어 산행을 시작했다.  뿌뚜는 자신이 관리하는 홈페이지에 필요한
정보와 사진을 찍기 위해 산행에 따라나서게 되었다.

마을 뒤쪽의 숲을 따라 바뚜르산으로 이어진 평탄한 길은 30분이나 이어졌다.

앞선 가이드의 뒤를 따라가면서 아내와 나는 연신 짧은 탄성을 질러야 했다. 별 때문이었다.
소리를 크게 지르면 우수수 쏟아져 내릴 듯한 보석들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가득하였던 것이다.
별, 별, 별, 별, 별, 온통 별뿐이었다.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자 아내의 숨소리는 좀 높아졌지만 전체적으로 바뚜르산의 등산로는
그다지 험로가 아니어서 편안한 편이었다. 한 시간 반쯤을 걸어 도착한 쉼터에서 콜라소년은
콜라를 팔고 마을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아마 다른 사람들과의 한번 더 산행을 할 생각인 것 같았다.

*위 사진 : 하산길에 다시 만난 콜라 파는 소년.

일행 모두에게 한 병씩 돌리려고 하니 가이드도 뿌뚜도 손사래를 치며 먹지 않겠다고 한다.
추운 날씨 때문이었다. 아내도 거절하였고 사실 나도 그다지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따뜻한 커피였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뚜껑만 딴 콜라 두 병은 소년이 내려가고 난 뒤
쉼터 움막의 쓰레기 통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위 사진 :  하산길에 돌아본 바뚜르산 정상부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고비는 모래 경사길이었다.
론리플래닛의 표기처럼 ‘세 걸음 올라가고 두 걸음 미끄러지는'
(CLIMBING UP THREE STEPS AND SLIDING BACK TWO)
정도는 아니었지만 발이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며 미끄러지는 통에 발걸음 옮기기가 성가셨다.
산행 도중 아내가 처음으로 쉬었다 가자고 한 곳이기도 했다.

* 위 사진 :  바뚜르산의 원숭이들은 울루와뚜의 원숭이처럼 짖궂지 않았다.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날카로운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며 매서운 추위가 느껴졌다.
높이 3천 미터에 달하는 5월의 아궁산보다 더한 추위였다. 추위는 단순히 고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날그날의 날씨에 따른 것 같았다. 좀 두터운 재킷을 준비해야 했으나 나는 아궁산 경험만을 믿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 말만 믿고 긴 팔 스웨터 하나만을 가지고 온 아내는 덕분에 얼굴이 파래졌고 평소 추위에 강하다고 자부했던
나 역시 반바지에 추리닝 윗도리뿐이라 견디기 힘들었다. 손이 시려 카메라를 땅에 떨어뜨릴 정도였다.

모두들 웅크린 자세로 동쪽을 바라보며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동쪽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멀리 롬복의 린자니산이 검은 실루엣으로 선명해 오고 바뚜르 호수가 여명의 하늘을 받아 어름처럼 빛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구름 위로 햇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정상에 있는 사람들은 가벼운 함성과 함께 일부는 박수를 치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일행과 함께 손바닥을 마주치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바뚜르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동쪽으로 바뚜르 호수의 경계면을 만드는 아방산 GUNUNG ABANG과
그 너머로 아궁산 GUNUNG AGUNG 그리고 더 멀리 롬복섬의 린자니 GUNUNG RINJANI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뚜르 호수는 발리의 들을 적시며 흐르는 모든 물의 시원지로서 신성하게 여겨진다.
전설에 따르면 호수의 여신 DEWI DANU와 어머니 산인 아궁산의 신은 호수의 깊은 곳에서 나와 발리의 산과 물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아궁산의 신은 남성의 상징으로 바뚜르 호수의 신은 여성의 상징으로 균형을 이룬다.

산세도 그렇다. 아궁산이 우직한 남성적인 산세를 지녔다면 바뚜르산은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에 비긴다면 아궁산은 지리산과 닮았고 바뚜르산은 설악산의 모습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바뚜르산 정상의 고도는 해발 1717미터로 설악산과 비슷했다.
아내와 나는 한국의 설악산을 오르기에 앞서 발리의 '설악산'을 먼저 오른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위 사진 :  가이드 마데가 하산길에 익살을 부리고 있다.

하산은 올라온 길을 그대로 되짚어 내려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올라올 때는 어둠 속에 별빛만 보고 왔으니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것은 모두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발아래로는 호수와 산 그리고 화산지형의 독특함이 만들어내는 경관이 장쾌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침 햇빛에 물든 산은 처음엔 붉은빛을 띠더니 점차 노란빛으로 변해갔다.
마치 늦가을 석양 무렵에 하산을 하는 기분이었다.

산을 다 내려와 뒤돌아보았다. 아내는 자신이 다녀온 길을 바라보며 가슴 뿌듯해했다.
혹 바뚜르산을 오르고 싶은 또 다른 누군가가 체력의 문제로 고민할지 모르겠다.
그럴 경우 아내는 대신 말해달라고 한다.

“장돌뱅이의 아내가 다녀온 산은 세상의 그 누구도 다녀올 수 있다.” 고.
누구나 오를 수 있다고 그 산과 산행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나 역시 행복한 산행이었다. 모든 산행이 그렇지만 아내와 함께 한 먼 나라의 산행이라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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