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또 다른 여행을 위하여
*위 사진 : 장례식 준비가 한창인 우붓팰리스 담 아래에서 한 여인이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바뚜르 산을 다녀온 것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일정은 끝이 났다.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뿌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며칠 뒤에 우붓팰리스 부근에서
대형 장례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아쉬움을 표현하자 뿌뚜는
그 전에도 규모는 작지만 우붓 인근에서 다른 장례식이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또 다른 세계로 영혼을 떠나보낸다는 의미에서 발리의 장례식은 축제의 장이라고 하던가?
시간을 쪼개어 가볼까 잠시의 고민을 하다가 아내와 나는 우리에게 남겨진 만 하루의 시간을
한가로운 휴식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예의 그 게으르고 느린 자세로 돌아갔다.
숙소의 텅 빈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는 것은 우리뿐이었다.
푸른 숲 사이로 선선한 바람도 천천히 불어왔다.
숙소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면 초록색 논과 작은 숲이 보인다.
방문을 열고 나올 때마다 허공 위로 휘어진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붉은 꽃이 그 초록에 대비되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아내와 내가 다시 발리에서 삶의 며칠을 함께 했다는 사실도 그 꽃처럼
오래도록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다. 여행 마지막에 습관처럼 반복되는 어떤 아쉬움조차도 바로 그 아쉬움 때문에
또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감미롭게 음미하고 싶어진다.
삶이 반드시 짧은 것만은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은 내가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으나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유쾌한 힘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2004년 7월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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