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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중국

지난 여행기 - 1999북경9

by 장돌뱅이. 2017. 9. 2.

16. 용경협(龍慶峽)엔 잘못이 없다

우리 가족은 용경협(룽칭사)을 가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하여 잠시 고민하였다.

여행 안내 책자나 여행기에는 대부분 이 곳의 풍광에 대하여 '작은 계림'이란 말로 찬사를 늘어 놓았다.
우리는 만리장성과 명13릉 관람을 빼고는 북경 시내 관광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엔 가고 말았다. 그리고 실망하고 말았다.
가기로 한 것은 나의 욕심 때문이었고 실망을 한 것은 나의 착각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온이 뚝 떨어져 있었다. 매우 쌀쌀한 날씨였다.
호텔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공원의 나무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크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겨울용 잠바를 준비해 온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나는 호텔 앞에 주차되어 있는 택시와 용경협, 만리장성, 지하궁전과 신도를 돌아오는 일정을 협의했다.

우리 가족이 이번 여행의 준비과정에서 본 용경협의 사진과 여행기는 시기가 대부분 여름철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찬사는 용경협의 물과 어우러진 싱그러운 초록의 계곡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간과했다. 우리가 갔을 때 그 곳은 얼음만 얼지 않았을 뿐 이미 한겨울이었다.
85 KM 떨어진 북경의 날씨와도 확연히 달랐다. 사진 속의 싱그럽던 푸르른 신록은 이미 앙상한 나뭇가지만를
드러낸 채 황량한 잿빛이 되어 있었다. 용경협은 계곡물을 70미터 높이의 댐으로 막아 놓고 유람선을 운행하는 곳이다.

우리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댐 위에 올라섰을 때 바늘 끝 같은 바람이 몰아쳐 왔다.
계곡 좌우로 가파른 경사의 산봉우리들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더욱 추웠다.
다른 사람의 용경협이 그대로 나의 용경협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왜 그 간단한 사실을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게 오는 법이다.
우리는 한껏 웅크린 자세로 알아들을 수 없는 안내원의 설명을 들어야 했다.
먼 유배지로 떠나가는 듯한
지루한 뱃길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면서.


18. 만리장성(万里长城 )

가보았건 아니건 만리장성(완리창청)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순히 외형적으로 만리장성은 인간이 만든 건축물 중 가장 거대한 것이다.
총 길이 6,700 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현재의 장성은 기원전 214년부터 북방 흉노족의 남하를 방지하기 위하여
장성을 축조하기 시작하여 그 후로 수백년간 여러 왕조에 걸쳐 증축, 연결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

현재는 일부만 개방되어 있는데 八達嶺 (빠다링)과 剝(무텐위), 司馬台(쓰마타이)의 장성이
일반인들이 오를수 있는 곳이다. 팔달령의 장성은 여행객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곳이며 잘 복원이 되어 있다.
그것이 팔달령의 장점이며 또한 단점이기도 하다. 나머지 두곳은 나도 아직 가보지 못했다.
팔달령에 비해 개발이 덜 되어 있다고하나 바로 그것이 장성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한다고 하여 찾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나도 여행 준비과정에서는 모전욕이나 사마태 쪽에 관심이 있었는데 실제 여행에서는 팔달령으로 갔다.
팔달령에는 용경협보다 세찬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성벽이 막아주기도 하고 시간이 정오를 지나면서 기온이 올라 돌아다니기에는 훨씬 나았다.

우리는 장성의 높은 곳까지 걸어 올라갔다. 장성은 산의 굴곡을 따라 굽이치며 멀리 아스라이
우리 시야가 닿는 곳까지 뻗어 나가 있었다. 
내 발로 찾아왔지만 장성에 대한 온갖 찬사나 과장된 묘사에 동의 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성벽을 쌓다가 죽은 사람들이 묻혀있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긴 무덤이라는 말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 유적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지난 시대의 문명과 유적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우리의 가치관과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또 그대로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장성에 가려고 하거나 이미 다녀온 사람 모두 다음과 같은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기억해둘만 하겠다.


장성은 산맥을 타고 흘러오는 역사와 같습니다.
만리장성은 제왕의 힘과 천하통일의 웅지를 보여주는 고대제국의 압권입니다.

그리고 천하통일은 또 막강한 통치력의 증거이며 동시에 문화의 높이를 보여주는 척도라 일컬어집니다.
유럽이 알프스 산맥의 서쪽 땅에서 한 번도 통일 제국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시종분립의 역사를 반복하여 왔음에 비하여,
광대한 중국대륙을 하나의 제국으로 묶어낸 만리장성은 동양적 통합력과 동양적 원융성의 실체라고 주장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만리장성은 화이(華夷)를 구분하는 패쇄의 성이며, 중화사상이 내장하고 있는 독선의 징표라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답적 준론은 스산한 폐허에 앉아 있는 나의 심정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념보다는 바로 손발이 닿아 있는 벽돌의 즉물성에 마음이 이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벽돌 한 장, 한 장에 맺혀 있는 무고한 사람들의 고한(膏汗)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만리장성의 축조뿐만 아니라 성곽, 궁궐 등 끊임없는 토목공사와 전쟁으로 뿔뿔이 찢어져야 했던
이산의 아픔이 절절히 다가옵니다......문득 만리장성에 바치는 모든 경탄의 소리들이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거대한 것에 바치는 경탄의 소리가 무심하기 짝이 없는 횡포처럼 느껴집니다. 만리장성을 내려오면서 나는 줄곧 만리장성이
갖는 최소한의 의미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 성벽에 바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너무 허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성벽의 축조에 희생된 사람은 물론이며 그 숱한 사람들의 아픔에 울적해 하는 우리들을 위해서도 만리장성은
최소한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문득 찾아낸 것이 만리장성은 방어를 위한 성벽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공격을 위한 거점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벽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만리장성이 방벽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저상한 마음을
그나마 달래주는 한 가닥의 위로였습니다. 나는 세계 이곳저곳을 주마(走馬)하는 동안 곳곳에 세워진 거대한 성채와 신전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그 밑에 묻힌 수많은 사람들의 주검과 노역을 외면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막상 만리장성에 올라
이것이 공격의 기지가 아니라 방어의 보루라는 깨달음은 무척이나 귀중한 발견같이 느껴졌습니다. 비단 이번 중국에서 만난 만리장성과 자금성뿐만 아니라 지금껏 만난 모든 성채와 신전 역시 방어의 축조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축조물이 과시하는 거대한 규모는
함부로 침략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함으로써 전쟁을 사전에 예방하는 이른바 예방전쟁의 역할을 수행해 왔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그것에 배어 잇는 별리의 아픔과 참혹한 희생에 마음 아프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것이 어느 한 사람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용으로 우뚝 서서 미연에 침략을 단념케 하였다면 참으로 다행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인류의 귀중한 유산이 되고 지혜의 소산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실 그러한 대규모의 축조공사는
그야말로 전쟁과 같은 공사였으며 전쟁과 같은 희생을 치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역은 분명 전쟁
자체보다는 나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더구나 오늘 우리가 쌓고 있는 전쟁 무기들과 비교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만리장성을 되돌아보는 나의 마음은 아무래도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만리장성의 대역사를 찬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것의 무모함을 타매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리장성을 찬탄할 수 없는 까닭은 장성의 축조는 어김없이 민초들의 곤궁과 분노로 이어지고 천하를 다시 대란으로 몰고
갔기 때문입니다. 그 무모함을 탓할 수 없는 까닭은 잔혹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장성을 쌓아 전쟁을 막으려 했던
일말의 고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공격용과 방어용의 구분이 애매해진 무기들을 조금이라도 높이 쌓아가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보다는 분명히 지혜롭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당태종은 북방 흉노족들과 화친을 성공적으로 맺고 돌아온 이세적 장군에게 '인현장성(仁賢長成)'
이라는 네 글자를 써주었습니다. '사람이 장성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장성으로도 얻을 수 없었던 국경의 화평을 필마단신으로
이루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어보다 화평이 낫고, 장성보다 사람이 나은 것이 분명합니다.

......겨울바람이 고송노석에 부딪쳐
휘파람이 되는 산상에서 생각은 하염없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화평을 만들어내고 사람을 키워내는 진정한 성을 쌓을 수는 없는가. 도도한 욕망의 거품으로부터 진솔한
인간적 가치를 지켜주는 보루를 쌓을 수는 없는가. 그리고 이러한 보루들을 연결하여 20세기를 관류해 온 쟁투의 역사를
그 앞에 멈추어 서게 할 새로운 세기의 성벽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만리장성은 이 모든 생각을 싣고 강물처럼 가슴 속으로 흘러듭니다."
                                                                                         -신영복의 책, 더불어숲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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