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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기타

지난 여행기 - 2003필리핀출장5(끝)

by 장돌뱅이. 2017. 9. 9.

7. 세부 샹그릴라리조트

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술판으로 자리를 이어갔고 나는 밤11가 넘어서야 호텔로 돌아올수가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샤워를 하고나서 나는 호텔의 이곳저곳을 산책했다.
바다는 검은 어둠으로 막혀 있었다.
파도소리만 들리는 바닷가에 잠시 앉아 있다가
수영장으로 와 의자에서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이 흘러가는 사이로 별들이 지워졌다간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어떤 별은 일초에 지구를 일곱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빛의 속도로 달려도 수만년이 걸리는,
영원히 가볼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다는데 지금 여기에 누워 내가 볼 수 있는 저 별빛들은
얼마나 아득한 시간과 공간을 넘어 내게 오는 것일까?
무슨 인연으로 나는 이 낯선 곳에 누워 그들을 맞고 있는 것일까?
지금 내가 고개를 들어 잠시 만나는 저 희미한 별빛조차 수만년의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이 넓고 넓은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인연은 얼마나 큰 것인가?
좀더 주위의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좀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로비 라운지에서 부르는 가수의 노래소리가 바람결에 꿈결처럼 희미하게 실려왔다.
나도 노래를 흥얼거려 보았다.
내일이면 아내와 딸아이를 다시 볼 수 있겠구나!


아침에 모닝콜에 눈을 뜨자마자 내가 서둘러 방의 커튼을 열고 하늘부터 보았다.
일출을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나는 호텔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한 후 바다에 제일 가까운 수영장에 몸을 담갔다.
물 표면엔 아직 새벽의 찬 기운이 어둠과 함께 남아 있었다.

그러나 기대처럼 일출은 볼 수 없었다.
구름으로 가린 수평선 쪽에선 붉은 기운이 잠시 뻗쳤을 뿐 가슴 벅찬 일출도 없이 주위는 이내 밝아왔다.
나는 수영장을 나와 젖은 몸으로 바닷가로 나갔다. 바다는 밤새 저만치 나가있었다.
해변에 앉아 바다의 끝을 바라 보았다. 해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시야는 수평선까지 거칠 것이 없었다.
이미 밝음은 와있었던 것이다.

삶이 기대를 앞질러 간적이 있었던가.
일출을 보려다 검은 구름만을 보고 바다를 보러왔다 산을 보고 가는 여행처럼 지나간 인생은 늘 아쉬움이다.
그래도 매일같이 아침은 다시 돌아오고, 있어야 할 것은 보이지 않아도 늘 거기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우리에게 순간마다 새롭게 시작하라고 가르친다.
나는 귀국짐을 꾸리러 천천히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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